[인문사회]서울 거리 바로세워 시민의 품으로 ´서울에세이´

  • 입력 2002년 11월 22일 17시 22분


◇서울에세이/강홍빈 글 주명덕 사진/182쪽 1만8000원 열화당

‘어휴∼, 예술의 전당까지 언제 가나?’

동아일보사가 있는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초동 ‘예술의 전당’까지 가야 할 일이 생기면 한숨부터 터져 나온다. 꽤 큼지막한 공연과 전시가 줄지어 열리는 세종로나 작은 문화들이 꿈틀거리는 인사동과 대학로를 다 등진 채 그 교통지옥을 뚫고 서울의 남쪽 끝까지 가야 하다니…. 교통의 불편을 무릅쓰며 큰 맘 먹고 가서는 공연이나 전시 하나를 본 후 다시 돌아올 일을 걱정해야 하는 곳이 한국 문화와 예술의 ‘전당’이다.

/사진제공 열화당

하지만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 길도 막상 자동차를 몰고 들어서 보면 그리 먼 거리만은 아니다.

서울의 중심부인 세종로에서 덕수궁 앞을 지나 서울시청에서 소공로쪽으로 방향을 약간 튼 후, 회현동을 지나 남산3호터널을 뚫고 나와서 용산과 이태원을 스치듯 지나가면 반포대교가 나타난다.

이 다리를 건너 넓게 뚫린 반포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정면에 ‘예술의 전당’이 기다리고 서 있다. 소공로의 병목과 반포대교 진입로에서 약간의 지체는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많은 차량의 행렬 속에서도 앞으로, 앞으로만 달리다보면 예상외로 30∼40분 정도면 도달하게 되는 곳이 ‘예술의 전당’이다. ‘교통지옥’이라는 서울에서 이런 마술을 부리는 도로는 경복궁에서 예술의 전당까지 거의 곧바로 이어진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강홍빈 교수(서울시립대·전 서울시 행정1부시장)는 이 길을 ‘신주작대로(新朱雀大路)’라고 부른다.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이니 주작대로란 임금이 있는 왕궁으로부터 남쪽으로 뻗은 중앙도로를 가리킨다.

조선초에 정도전이 경복궁을 짓고 이 왕궁 정면의 주작대로와 이를 가로지르는 종로를 중심으로 한양을 설계한 뒤, 이 주작대로는 600년 세월을 두고 청계천을 건너 남산을 지나 한강을 건너서 우면산까지 이르는 ‘신’주작대로가 됐다.

강 교수는 사진작가 주명덕씨와 함께 이 길에 쌓인 역사의 지층을 파헤치며 봉건왕조로부터 근대로의 이행 과정이 이 도시공간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야기한다. 그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성리학적 이상사회를 건설한다는 고도의 문화정신을 갖춘 도시계획 속에서 건립됐던 이 도시가 일제강점기의 침탈과 근대화 과정의 ‘불도저’식 도시개발을 통해 훼손 파괴된 과정을 성찰하며 이 도시를 ‘시민’에게 되돌려 줄 길을 모색한다.

민족과 근대국가의 영욕이 교차하는 세종로, 언론사와 서울시청과 시의회가 들어선 공론(公論)의 거리 태평로1가, 강요된 개화의 흔적이 곳곳에 쌓여 있는 정동, 권력과 돈이 만나 왜곡된 거리 소공로, 도심의 부침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남대문시장과 명동, 도시의 ‘휴경지’가 된 회현동, 세계화의 주변부에서 아픈 상처처럼 남은 이태원, ‘국토개발’의 구호 아래 사람의 발길을 차단한 한강변, 자유와 평등에도 차등이 있음을 보여주는 듯한 서초동 법원단지, 그리고 문화를 통치수단으로 삼아 베르디와 피카소, 추사를 한곳에 강제 동거시킨 예술의 전당.

저자는 이 거리가 특히 광복 후 급속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크게 왜곡됐다고 지적한다. ‘위로부터’ 강요된 ‘불도저’식 근대화에 의해 초래된 이 도시의 왜곡을 치료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는 ‘시민에게 되돌리는 것’이라는 처방을 내놓는다. ‘국가’와 ‘민족’의 차가운 거리 세종로에 ‘붉은 악마’의 물결이 생명력을 불어넣었듯이, ‘시민’ 스스로의 참여와 논의를 통해 시민의 열기와 자발성, 창의성을 불어넣을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에는 근대 이전의 조선조가 남긴 지층, 일제강점기 ‘식민지 근대화’ 속에서 형성된 지층, 그리고 광복 후 ‘산업근대화’ 과정에서 이룩된 지층이 공존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혼돈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울에 생기를 가져다주는 다양성이요 역동성이며, 시민들은 여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하나의 ‘꿈’을 꾼다. 서울의 고궁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넓고,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버금가는 크기의 용산미군부지가 우리의 손에 돌아오면, 그 땅을 고리로 삼아 한강과 남산을 잇고, 나아가 관악산과 북악을 공원축으로 연결해 푸른 서울, 시민들의 발길에 생기가 넘치는 서울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까지 그의 화두를 놓지 않는다.

‘어떻게 이 길을 시민사회와 밀착된 장소로 되살려 놓을 것인가’.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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