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페미니즘은 운동 아닌 사랑" '행복한 페미니즘'

  • 입력 2002년 11월 22일 17시 13분


◇ 행복한 페미니즘/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256쪽 9800원 백년글사랑

제목:사랑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페미니즘 운동

흑인 페미니스트 사상가이자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운동가인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원제:누구나를 위한 페미니즘)을 읽는 동안 상아탑이나 이론서 속의 여신이었던 페미니즘이 그 높은 데에서 걸어나와 내 팔꿈치 옆으로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머리는 페미니스트이되 생활 속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성차별주의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하여, 페미니즘은 좋지만 지금 여기에서 실천할 방법론을 몰라서 그냥 ‘한(恨) 오백년’이나 부르다 가겠노라는 우리들을 위하여, 백인 중산층 지식인 여성, 즉 어떤 종류의 ‘계급 권력’을 위한 페미니즘 이론이 나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제3세계 유색인종 여성인 우리들을 위하여 이 책은 여기에 왔다.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인종적, 성적 불평등의 낙인이 두 개나 찍혀 태어난 벨 훅스는(그녀와 나는 동갑이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스탠퍼드대학 등 캘리포니아에서 공부하면서 서부 지역의 60년대 반전 운동, 인권 운동, 페미니즘 운동 등을 직접 보고 겪었고 그러기에 그동안의 페미니즘 운동의 긍정적인 성과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최근에 들어 긍정적 전망을 잃어가고 있는 페미니즘을 위해 과감한 비판의 수혈을 하고 있다. 먼저 대중들은 가부장제적 매스 미디어에 의해 페미니즘을 배우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는 모두 레즈비언이다’ ‘그들은 남성을 적으로 간주한다’라는 왜곡된 담론에 빠져 페미니즘을 멀리 하게 되는데 그러한 왜곡된 편견을 바로잡고 “다시 시작하는 페미니즘은 ‘사랑에서부터’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19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장의 제목만 읽어봐도 그녀의 책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줄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자매애는 여전히 힘이 세다’ ‘우리의 몸, 우리 자신’ ‘여성과 일터’ ‘페미니스트 남성성’ ‘페미니스트 부모 되기’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페미니즘과 영성’ 등 일상과 가까우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싶었던 문제들을 자상하고 명쾌하게 다루고 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여성 자신의 권리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나? 피임약과 낙태와 성 해방의 관계는? 외모 강박, 다이어트 강박, 거식증, 소식증 등 여성 신경증이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허상에 의한 것이라면 내 몸을 나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 페미니스트의 결혼은 비(非)페미니스트의 결혼과 어떻게 달라야 하나? 페미니스트 부모는 다른 부모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등등 평소에 내가 갈등했으나 풀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한 고뇌와 답변이 솔직하게 다가온다. ‘페미니스트 부모 되기’를 읽으며 솔직히 나는 남모르는 반성도 좀 하게 되었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적 지배와 억압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운동”이라는 그녀의 화두는 ‘그러기에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 어린이와 사회적 소수자, 전지구적 가부장제적 자본주의에 시달리는 제3세계인들 모두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의 페미니스트 정치학과 철학, 페미니스트 문학 이론 등이 거시(巨視) 여성학을 지향했다면 벨 훅스의 이 책은 밥상 옆에 두고 읽어도 좋을 만큼 우리의 작은 일상들을 위한 미시 여성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내 곁에 가까이 둘 수 있는 다정한 팔꿈치 옆의 페미니즘서(書)이며 그녀에게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바로 지금 당장부터라도 내 생활을 고쳐나갈 수 있는, 새롭고 실행 가능한 대안을 다정하게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김 승 희 서강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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