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IMF 5년'이 부끄럽다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8시 26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지 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그 날의 치욕을 잊을 수 없다. 자력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없어 IMF관리체제에 들어간 것은 경제 신탁통치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과연 우리는 5년 전 충격을 극복하고 다시는 위기를 반복하지 않을 교훈을 얻었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IMF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지만 지난 5년과 오늘의 우리 경제를 살펴보면 자신감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선다.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사사건건 IMF의 통제를 받는 수모를 겪었는데도 5년 전 정권 말기와 비슷한 위기국면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의 경제예측기관이나 정부 관리들이 기본체력이 튼튼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업과 국민은 불안한 것도 외환위기 이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157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시도했지만 과연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카드빚과 주택자금 대출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급격한 소비위축으로 심각한 경제불황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랑해온 현 정권은 선거를 의식해 지나친 내수부양조치로 ‘제2의 위기’를 자초한 감이 없지 않다.

현 정권이 자랑해온 개혁작업도 지지부진하다. 무엇보다도 외환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됐던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의 폐해는 오히려 더 확대되었다. 대북지원을 둘러싼 현대그룹과의 유착 의혹과 잇따른 벤처게이트가 대표적인 증거이다. 현대상선에 지원된 4000억원의 행방에 대한 의혹은 실패한 금융과 회계개혁의 한 단면이다.

현 정권은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주장해왔다. 국민은 또 다른 위기를 걱정하는 처지인데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일부 연구기관의 평가를 빌려 낙관론을 펴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정부는 실적 자랑에 앞서 제대로 된 ‘외환위기 백서’를 만들어 스스로 반성하고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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