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기호학으로 세상읽기´

  • 입력 2002년 10월 11일 17시 47분


◇기호학으로 세상읽기/기호학연대 지음/487쪽 1만7000원 소명출판

우리는 지금까지 영화를 ‘보러’ 간다고 말하고 음악을 ‘들으러’ 간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부정확하다. 우리는 영화를 단지 시각적으로 보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단지 청각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혹은 음악을 수용하는 행위는 보다 복합적이고 총체적이다. 이런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양상을 수용하기 위해 우리는 영화나 음악을 텍스트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읽는다’.

오늘날 무엇을 ‘읽는다’는 용어는 그것이 글이나 책과 같은 문자에 적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영화도 읽고, 음악도 읽고, 더 나아가서 문화와 세상을 읽는 시대에 살게 됐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냥 수용해 왔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텍스트로 읽음으로써, 세상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다양한 의미들을 포착하려 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하는 방법론적 문제다.

기호학은 이런 방법론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 세상을 기호로 본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다양한 것들을 기호 체계 속에서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우리가 어느 한 부분을 놓고, 거기에 무리한 해석을 가하는 일은 적어도 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필자들은 이런 기호학적 도구를 활용하여 우리 주변에 친숙한 문학, 광고, 옷, 연극, 영화, 사진, 만화, 음식 등 다양한 텍스트들이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필자들은 아마도 기호학이 갖는 실천적 역할을 염두에 둔 듯하다. 기호학이 단순한 추상화 혹은 닫혀진 구조 만들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실천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호학이 단지 학문 체계에 머물지 않고, 누구든 그 주변에 널린 텍스트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인문학적 실천의 도구가 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신선한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지금까지 기호학은 그것에 사용된 도구의 난삽함으로 인해, 일반인에게 어렵게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보다 소통 가능한 기호학의 이론과 실천을 추구한다. 이 책에서는 그 실천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보이는데, 독자는 이를 통해 오늘날 쟁점이 되는 기호학의 실천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필자들은 기호의 경계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기호 혹은 기호학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것은 기호학이 닫혀진 기호의 영역에 머무르는가, 아니면 보다 열린 세계로 기호를 개방할 것인가의 문제도 된다. 이런 점은 기호학이 현상을 추상적으로 재단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기호학자들은 기호에 관심을 갖지만, 그가 설정한 기호 너머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떤 기호학적 틀로 수용할 것인가 하는 기호 내지는 기호학 자체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보여준다. 이는 기호가 근본적으로 무엇을 나타내는 메타적 속성을 갖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개념을 설정하되, 그것을 상대화하거나 해체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이 책의 필자들이 기호에 대해 열린 사유를 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은 기호에 대한 자기반성적 진지함과 기호학에 대한 열정적 신념이 어우러져, 기호학이 갖는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필자들은 기호학으로 연대하여 이 세상을 기호학으로 평정하고 싶은 생생한 욕망을 글 속에 드러낸다. 그래서 이들의 담론은 싱싱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 책이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기호학을 계몽하려는 욕망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미 많이 소개된 이론을 평이하게 서술해주는 것은 이 책이 드러내는 열정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지면에 실렸어야 했던 것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인가 들쑥날쑥한 느낌이 들고, 때로는 조금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은 그런 계몽적인 글쓰기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기호학의 현장에서 막 공부한 필자들은 그 생생함을 그대로 그들의 글 속에 드러낸다. 많은 부분 텍스트들은 이론을 소개하는 계몽적 의도에 의해 재단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많은 글들이 바르트, 그레마스, 에코 등에 의존하고 있다. 텍스트로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더 신선한 기호학의 도구들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면 욕심일까.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한다면, 각 장의 뒤에 덧붙인 ‘더 읽어야 할 책’의 내용을 가득 채운 영어, 불어, 독어로 된 참고문헌들은 누구더러 읽으라는 것인가.

의욕적인 기획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기호학의 다양한 실험들을 보여주고 있어, 독자를 즐거운 긴장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이 책은 기호학이 갖는 그 ‘생경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한 듯 하다. 그 생경함조차 기호로 받아들이는 진지한 독자들이 그런 부분들을 메워 줄 것으로 믿는다.

송효섭 서강대 교수·국문학 hsong@mail.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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