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7000만명이 왜 200만명에 졌을까? ´살육과 문명´

  • 입력 2002년 10월 11일 17시 47분


◇살육과 문명/빅터 데이비드 핸슨 지음 남경태 옮김/772쪽 3만2000원 푸른숲

살라미스해전은 해전 사상 가장 격렬한 전투 중 하나로,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의 승리로 종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구 7000만명에 영토가 100만 평방마일에 이르는 페르시아였지만 인구 200만명에 불과한 그리스 군대에 참패했다. 무려 35배나 되는 인구를 가지고 마치 골리앗이 다윗에게 당하듯 쓰러지고 만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인 저자는 ‘자유’야말로 이 전투에서 그리스인이 승리를 거둔 진정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의 시민은 왕이나 사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가족, 자신의 재산을 위해 싸우기 때문에 더 뛰어난 전사가 될 수 있었고, 페르시아군은 전제 군주를 위해 봉사하는 노예였으므로 패배했다는 것이다.

자유는 군사적으로 유용하다. 자유는 사기를 드높이고, 하급 병사들에게까지도 자발성과 자신감을 심어주며, 획일적인 명령 대신 지휘관들 사이의 합의를 이끌어낸다. 저자는 자유시민으로 이루어진 군대 체제를 ‘시민군국주의’라고 부르는데, 이 시민군국주의는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빛을 발했다.

해전 역사상 최대규모의 항공모함 전투로 꼽히는 1942년 6월 4일의 미드웨이 해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결정한 전투였다. 일본은 불과 12시간 동안에 네 척의 항공모함과 2155명의 병사, 332대의 항공기와 숙련된 조종사들을 잃었다. 미국은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진주만 기습의 악몽을 6개월 만에 깨끗이 털어낼 수 있었다.

19세기 말 이후 일본은 경제와 군대를 유럽식으로 근대화하면서, 민간 부문에서는 위계적이고 전제적인 아시아 양식을 존치시켰다. 테크놀로지는 수입해도 ‘타락한 서구 개인주의’는 배제하겠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같은 ‘화혼양재(和魂洋才)’의 대응방식이야말로 일본 패전의 요인이었다고 지적한다.

군사적 우위란 발달한 무기를 보유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전체에서 비롯된다. 미드웨이에서 일본은 성능이 더 좋은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문화는 갖지 못했다.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 토론 및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천황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획일적 위계질서를 강요한 ‘화혼’이야말로 일본 패배의 핵심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밖에도 푸아티에전투, 레판토전투 등 역사상 주요 전투에서 자유와 개성존중의 문화를 보유한 진영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는 일관된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친다.

마지막 장에 서술된 베트남의 1968년 테트전투(구정 공세)는 별개의 책으로 다루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 장 역시 미국 보수 세력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균형 감각을 지닌 독자라면 유익한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서평을 작성하면서 인터넷 아마존 서점을 클릭했더니 미국 전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가 평범한 한 사람의 독자 자격으로 이 책을 비롯한 80여 권의 신간 서적들에 대한 서평을 올려놓았다. 소탈한 자세로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정치 지도자를 둔 미국 국민이 부러워진다.

박 상 익 우석대 교수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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