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플레이보이

  • 입력 2002년 10월 4일 18시 19분


53년 미국의 무명 만화가 휴 헤프너는 영화 ‘나이애가라’를 보고 여주인공 마릴린 먼로에게 끌리게 된다. 남자를 홀리는 듯한 요염하고 뇌쇄적인 자태가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이듬해 ‘플레이보이’지(誌)를 창간한 헤프너는 그녀를 창간호의 표지모델로 발탁했다. 선택은 적중했다. 겨우 8000달러로 시작한 잡지사는 창간호부터 수백만부가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27세의 헤프너는 일약 돈방석에 앉아 인생이 바뀌는 전기를 맞고 마릴린 먼로는 섹스심벌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던가.

▷‘플레이보이’는 인간의 성에 대한 욕망을 대중화시킨 잡지다. 지금 수준으로 보면 별것도 아니지만 이 잡지의 성 표현은 창간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그 후 ‘펜트하우스’나 ‘허슬러’ 같은 경쟁지가 등장하면서 내용은 더욱 대담해졌다. 사진기자들은 여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어쩌면 그렇게 오묘하게 앵글을 잘 잡던지. 그만큼 판매량도 늘어나 70년대에는 월 700만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실제 생활에 스며들기 어려운 성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지금 중장년인 사람 중에도 청소년시절 이 잡지를 훔쳐보며 얼굴을 붉혔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플레이보이’ 표지모델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재미(在美) 누드모델 이승희씨는 이후 한국의 한 방송에 출연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플레이보이지는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아마도 ‘격조 있는 성인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플레이보이’는 ‘여자의 몸과 섹스’가 중심 소재이긴 하지만 정치뉴스나 사회적인 이슈, 유머 등도 ‘양념’으로 담고 있다. 매호 유명작가의 단편소설을 싣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내후년에 창간 50주년을 맞는 ‘플레이보이’가 이번에는 진짜로 변신을 시도하는 모양이다. 헤프너 회장은 “앞으로는 노골적인 성 표현을 줄이겠다”고 선언했고 이를 위해 40대의 젊은 사람을 새 편집인으로 기용했다. 넘쳐나는 비슷한 유의 성인잡지들과 인터넷의 노골적인 성인사이트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든 탓이다. 지금 ‘플레이보이’는 전성기 때 판매량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헤프너 회장의 결심은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차별화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점잖아진 ‘플레이보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여러 명의 여자와 동거하는 등 그 자신이 유명한 플레이보이 이기도 한 헤프너 회장은 이 기회에 ‘점잖은 노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어느 쪽이 더 쉽게 점잖아질지가 궁금하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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