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로마시대엔 1년이 열달 ´시간의 발견´

  • 입력 2002년 10월 4일 17시 15분


◇시간의 발견/스튜어트 매크리디 엮음 남경태 옮김/325쪽 1만8000원 휴머니스트

내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불경스러운 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시간에 관한 장을 읽을 때였다.

“저는 당신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만 무지한 이교도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부디 알려주십시오.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전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시간을 창조하셨다면 시간이 창조되기 전의 시간은 어떤 것입니까? 아니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며, 현재는 길이가 없는 점에 불과한데 과연 시간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나 있는 겁니까?”

시간의 정체가 모호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철학자들은 물론이고 원자 시계를 가진 과학자조차 자신이 재고 있는 것의 정체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있다. 매일 시간 맞춰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며,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헐레벌떡 뛰어가면서도, 우리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얼까? 물론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신과의 현학적인 대화의 형식을 빌어야만 시간의 정체에 다가설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고백록’보다 훨씬 가볍고 경쾌한 목소리로도 시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발견’은 그런 미덕을 지녔다. 이 책은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그리고 역사적 기록 속에서 시간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역사학자, 과학자, 철학자 등으로 이루어진 저자들은 시간을 조사하고 온 8인의 탐사대처럼 시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저자들은 마치 “너 이거 아니?”하고 말하는 것 같다.우리 몸엔 생체 시계가 있어서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하루 24시간의 주기를 대체로 유지한다. 우리는 보통 놀 때와 일할 때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고 느끼는데 그 이유는 대뇌의 뉴런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

달력들의 역사는 시간에 대한 계산이 꼭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1년을 열 달로 1주일을 8일로 정했던 로마 이야기나, 500년 동안 단 하루의 오차도 없이 금성의 운동을 기록하며 그것의 584일 주기를 기본으로 삼았던 마야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이 정확한 태양년을 맞추려는 지적 욕구보다는 부활절 날짜를 정확히 계산하려는 종교적 욕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또 하루를 세세하게 분할하고 균등화하는 데 이용되었던 시계는 정확한 기도 시간을 알리려 했던 교회와 일출 일몰에 상관없이 일을 시키고 싶어했던 제조업자나 상인들 덕분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동안 시간에 관해 이처럼 다양한 메뉴를 준비한 책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신은 나를 너무 몰라!”라는 시간의 푸념을 표지에 올린 것은 저자나 출판사의 정당한 자신감으로 보인다. 다만 책을 읽고 난 후에도 표지에 실린 시간은 여전히 내게 같은 푸념을 늘어놓는 것 같다. 비록 현대의 과학이 시계를 1만년에 1초밖에 틀리지 않는 수준으로 올려놓았고, 우주의 나이까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시간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마 베르그송은 펄쩍 뛸 것이다. “이 책이 시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내가 들은 건 시계와 달력, 몸 안에서 일어난 주기적 반응 몇 가지에 대해서네. 시간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고병권 수유연구실 연구원·unzeit@hanmir.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