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눈]정옥자/조선에 지역할당제 있었다

  • 입력 2002년 9월 29일 18시 25분


대학이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인재양성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자질과 능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는 일이 우선이다. 서울대가 지난 세월 우수학생을 독점하다시피 하였으나 그 결과는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 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대가 선발하고 있는 우수학생이 과연 훌륭한 인재가 될 재목인지 가늠해 볼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곧 선발기준과 입시제도의 문제에 귀결된다.

▼과거-성균관 유생 선발때 도입▼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과 같은 시험제도로는 더 이상 좋은 인재를 선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온갖 과목 모두 골고루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현행 입시제도는 학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전공이기주의에 입각한 백화점식 교육의 결과이기에 인재를 골라내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학생들을 점수기계로 몰고 가는 현행 대학입시제도는 한계점에 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험에 의한 인재선발이 한계에 부닥치면 추천제에 대한 논의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추천의 공정한 잣대가 작동되지 않을 경우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되므로 추천제의 도입은 위험 부담이 크다. 그래서 서울대가 지방과 농촌에서 조기 개발되지 않은 인재에 눈을 돌리려는 지역할당제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찬반양론이 있는 것이다. 이 제도는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인데 우리 역사에도 이미 지역할당제의 전통이 있다. 조선시대의 금석지전(金石之典)이라고 불리는 경국대전 예전에 규정된 과거제도에서 지역할당제와 능력주의를 조화시키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다. 고급관리의 등용문인 문과(혹은 대과라고도 함) 시험은 3년마다 정기시험을 치르는데 1차시험인 초시(初試)에서 240명을 도별 인구에 비례하여 정원을 할당하고 있다.

국립대학인 성균관 유생에게 50명, 서울에서 치르는 시험인 한성시에 40명을 배정하고 나머지 150명은 경기도 20명, 충청도와 전라도 각 25명, 경상도 30명, 강원도와 평안도 각 15명, 황해도와 함경도에 각 10명씩을 배정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 안배를 하여 뽑은 후 2차시험인 복시(覆試)에서는 성적순으로 33명을 뽑고 3차시험인 전시(殿試)에서는 갑(3명) 을(7명) 병(23명)으로 등급을 매겨 그 등급에 따라 6품 이하 당하관의 벼슬을 배정하였다.

대과(大科)보다 앞서 치르는 자격시험 성격의 소과(사마시·司馬試 혹은 생원진사·生員進士시험으로 별칭) 역시 지역 안배와 능력을 조화하는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초시에서 700명을 선발하는데 한성시에 200명을 배정하고 나머지 500명은 경기도 60명, 충청도와 전라도 각 90명, 경상도 100명, 강원도와 평안도 각 45명, 황해도와 함경도 각 35명이었다. 이렇게 지역할당제에 의하여 1차 선발한 후 복시에서 생원시와 진사시에 각각 100명씩 성적순으로 200명을 선발하여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문과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였다.

유일한 국립대학인 성균관의 정원은 200명으로 기본적으로는 소과 합격생인 생원과 진사로 충원되고 결원이 생길 경우 서울의 사학(四學)생도 중 15세 이상으로 소학과 사서오경 중 하나에 능통한 자나 문음(門蔭:집안배경)의 적자로 소학에 능통한 자, 대과나 소과의 초시합격자, 관리 중 입학을 원하는 자 등으로 채웠다. 따라서 성균관의 입학자격도 기본적으로 지역할당제와 능력주의에 입각하였다는 결론이다.

▼서울大 지방인재발굴 관철을▼

서울대는 이러한 전통과 외국의 선례에 근거를 두고 지역할당제를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서울대의 실험은 많은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지만 한계상황에 이른 한국대학들의 진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므로 여론의 지지와 지속적인 추진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여러 유형의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현대는 대체로 머리 좋고 민첩한 참모형을 필요로 하는 시대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을 조직하여 포용하고 지도해 나갈 큰 인물은 더욱 필요하다. 서울 중심으로 편제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지방의 소외된 인재에게 기회를 주는 일은 사회 통합의 차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큰 인물을 발굴한다는 의미가 크다. 취지가 좋으면 방법은 머리를 맞대고 짜내면 된다.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규장각관장 junga9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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