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위 16일 활동 마감…일부기관 비협조 진실캐기 한계

  • 입력 2002년 9월 13일 18시 20분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발생한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출범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16일로 1년9개월의 법적 활동시한을 마감하게 된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표방하며 출발한 진상규명위는 그동안 일부 의문사를 추적해 공권력의 개입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기를 두려워하는 관련 기관과 당사자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닥쳐 많은 의문사는 진상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성과〓83건의 조사대상 사건 중 13일 현재 11건이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행사로 숨진 것으로 판정됐다. 21건은 민주화운동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11건은 진상규명 불능 판정이 내려졌다.

1973년 ‘유럽거점 간첩단’에 연루된 혐의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 숨진 최종길(崔鐘吉·당시 52세) 서울대 법대 교수는 중정의 고문이 죽음의 직간접적인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84년 부대에서 총을 쏴 자살한 것으로 발표됐던 허원근(許元根) 일병 사건은 술자리에서 발생한 오발사고를 군이 자살로 조작해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신정권 시절 있었던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중정에 의해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황인성(黃寅成) 사무국장은 “유족들한테 엄청난 고통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묻힐 뻔했던 죽음의 진상을 밝혀냄으로써 당사자에게는 명예회복을, 가족에게는 눈물을 씻어 줬다”고 말했다.

▽긴 투쟁, 짧은 활동기간〓의문사 유가족들의 422일간에 걸친 천막농성 끝에 어렵게 만들어진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은 조사활동 기한을 6개월로 정했고 필요한 경우 3개월 연장하도록 했다.

이후 두 차례 법 개정을 통해 활동기한이 1년10개월로 늘어났지만 이 기간도 57명의 조사관이 83건의 의문사를 처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기한에 쫓겨 조사활동을 마감하게 됨으로써 아직도 조사가 진행 중인 사건은 또다시 어둠 속에 갇히게 될 전망이다.

▽미약한 권한과 관련기관의 비협조〓진상규명위는 수사권 소환권 기소권이 없다. 또 통화 명세나 계좌 추적조차 할 수 없어 오로지 관련자를 불러 입씨름을 하는 수밖에 없다.

관련자가 소환에 불응해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정윤기(鄭倫基) 명동성(明東星) 최광태(崔光泰) 검사, 서의남 전 보안사 심사과장 등을 불러 조사하려 했지만 모두 불응했다.

관련 기관의 협조도 필수적이지만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 검찰 경찰 등 조사대상 기관들이 현장조사나 자료 제출을 거부해 발목을 잡았다.

김준곤(金焌坤) 상임위원은 이같이 미약한 위원회의 권한을 “모종삽을 주고 금광을 캐라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따로 노는 한지붕 두가족〓진상규명위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기관과 민간단체의 장점을 취한다는 의도로 시민단체 활동가와 기관에서 파견나온 공무원 등 반관반민(半官半民) 조직으로 꾸려졌지만 이런 조직 구성은 시너지 효과보다는 오히려 구성원간에 마찰을 초래했다.

자신의 소속 기관이 한 불의와 비리를 조사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인 관 출신 조사관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 중 일부는 조사 내용을 소속 기관에 몰래 알려주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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