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추적! 증시정보흐름]정보 왜곡-과장 심하다

  • 입력 2002년 9월 2일 18시 18분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정보를 모아 분석, 전망하여 그 결과를 다수의 투자자에게 알린다. 정보 제공자인 기업과 다수의 투자자를 중개하는 역할이다. 증권시장의 언론인 셈.

한국 증시에서 애널리스트가 제기능을 하기는 쉽지 않다. 기업의 눈치를 봐야 하고 투자자의 비위도 맞춰야 한다. 기업의 보도지침에 따르면서 투자자의 입맛도 맞추려면 왜곡 보도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보를 왜곡하는 구조〓A증권 B연구원은 8월 한 업체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가 곤욕을 치렀다. 해당 업체의 실적을 다소 어둡게 전망했기 때문.

보고서 내용이 신문에 실리자 업체로부터 그를 질책하는 전화가 왔다. “왜 그런 보고서를 썼느냐. 앞으로 우리 회사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실상 출입금지 통보였다. 앞으로 해당 기업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어렵게 됐다는 뜻이다.

D증권의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8월 초 반도체 값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펀드매니저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반도체 관련 대형주를 보유한 펀드매니저에게 반도체값 하락 전망이 반가울 리 없다.

연구원은 여러 곳의 눈치를 봐야 한다. 특히 정보를 쥐고 있는 기업의 비위를 건드리기는 쉽지 않다. 기업의 비밀주의 때문이다.

여기에 펀드매니저는 물론 소속 증권사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한 애널리스트는 “윗선에서 기업에 대한 나쁜 전망을 보고서에 담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에 대한 투자의견은 매도 중립 매수 강력매수 등 크게 네 가지. 이 가운데 매도 의견은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신영증권은 매도 의견을 과감히 내겠다고 밝혀 증권가의 화제가 됐다. 장득수 투자전략팀장은 “애널리스트에게 재갈을 물린 풍토에서는 건전한 보고서를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신영증권의 방침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만큼 애널리스트가 솔직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공정공시, 과잉규제?〓늦어도 올 연말까지는 기업정보를 특정인에게 먼저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공정공시제도가 도입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연구원→투자자’의 정보 흐름에 큰 변화가 생긴다. 기업은 모든 정보를 동시에 지체 없이 제공해야 한다. 누구에게라도 정보를 제공하려면 공시를 해야 하는 셈이다.

우리증권 신성호 이사는 “이 제도를 시행하려면 모든 투자자가 접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기업이 수시로 정보를 공시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면서 “기업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오히려 정보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기업이 의무사항만 공시하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밝혔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상익 연구원은 “공정공시제도가 도입되면 기업 탐방을 다닐 필요가 없고 제공되는 자료만으로 분석해야 한다”면서 “기업들이 공식적이고 정기적으로 기업 상태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애널리스트도 분석과 전망으로 경쟁해야〓애널리스트의 일은 ‘모자이크’에 비유된다. 여러 조각(정보)을 모아서 큰 그림(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그림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고 투자를 권하는 것.

지금까지는 애널리스트가 정보를 혼자 제공받는 대신 업체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사례가 많았다. 기업과 친한 정도가 연구원의 능력으로 평가됐을 정도. 이는 정보의 음성화와 왜곡된 그림으로 나타난다.

장득수 팀장은 “이제 애널리스트는 정보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능력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공시 시행 뒤 예상되는 에널리스트 역할의 변화
변화공정공시 이전공정공시 이후
긍정적인 변화△기업에 대해 좋은 정보만 투자자에게 전달△나쁜 정보는 무시하거나 기업 분석 리포트를 아예 내지 않음△좋은 정보이건 나쁜 정보이건 정보 자체가 희소성을 가짐△모든 정보가 균형 있게 애널리스트 입을 통해 전달될 가능성 높아짐
△기업분석 능력보다는 회사 주식담당자와의 친분이 중요△친분을 통해 기업 내부정보를 빼내는 애널리스트가 적지 않았음△친분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게 불가능해짐△기업실적을 추적하고 분석할 수 있는 유능한 애널리스트가 부각됨
부정적인 변화△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에 비해 일반 개인투자자는 정보를 늦게 아는 때가 많음△기업정보가 더 은밀히 유통될 가능성이 있음△영향력 있는 주주, 큰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내부자 등을 통해 정보가 더 비밀스럽게 새나갈 가능성 있음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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