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연숙/삼각관계

  • 입력 2002년 8월 11일 19시 20분


영화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요즘에는 영화관 가는 일이 뜸해졌다. 볼 만한 영화가 별로 없다. 여러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많이 생겼지만 영화들은 대개 엇비슷하다. 폭력과 섹스, 외계인과의 전쟁,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가 주류를 이룬다. 이런 것들은 1회용 스트레스 해소제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영화관에 일부러 찾아가서 보고 싶진 않다. ‘시네마 천국’이나 ‘가시나무 새’와 같이 기억에 오래 남고 가슴이 꽉 차는 그런 영화는 찾기 힘든 것 같다.

▷그래서 TV드라마를 선호하는 편인데 요즘 TV드라마를 보노라면 분노를 느낄 때가 많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남의 말을 엿듣거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등 교양이나 도덕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옛 애인과 헤어진 후에도 계속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나며 삼각관계를 맺어 가정 풍파를 일으킨다. 우연의 일치가 너무 자주 일어나서 사건의 인과관계가 억지로 조작된 느낌마저 든다. 안방극장에서 사랑의 삼각관계를 가만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한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유형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삼각관계는 1970, 80년대까지 거의가 다 남자 1명에 여자 2명이 관련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조강지처를 두고 일본 도쿄로 유학 간 남주인공이 신여성과 사랑에 빠지거나, 남자가 본처 이외에 정부를 둬 가정이 파괴되는 영화가 그것이다. 즉 남성우월주의를 말해주는 ‘남녀녀(男女女)’ 시대였다. 반면 서양의 소설이나 영화의 여주인공은 대체로 두 남자의 사랑 속에서 갈등을 겪는다.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와 카이사르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아름답고 생활력 강한 스칼렛이 풍운아 레트 버틀러와 신사적인 애슐리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여남남’ 패턴이다.

▷최근 우리 안방드라마의 삼각관계는 분명히 ‘여남남’의 서양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가을동화’가 그랬고 ‘아름다운 날들’ ‘유리구두’ ‘순수의 시대’가 그렇다.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는 것도 새 풍속도이다. 요즘도 전통적인 ‘남녀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되, 그런 경우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여자도 남자친구를 사귀는 맞바람 패턴, 즉 삼각관계가 아닌 사각관계(?)가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삼각관계의 패턴이 바뀐 것이 발전인지 퇴보인지 잘 모르겠다.

홍연숙 객원논설위원 한양대 명예교수·언어학 yshong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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