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박영길/국가이미지 관리기구 만들자

  • 입력 2002년 8월 11일 19시 20분


백악관을 포함한 미국의 외교 정책과 관련된 3개 중요 기관은 매우 이례적으로 지난주 동시에 동일한 주제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시인하고 각각의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그 주제는 ‘미국의 이미지’였다.

미국의 해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외교정책의 메시지를 정확히 알리기 위해 백악관은 ‘세계 공보국’(Office of Global Communications)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신설키로 했으며, 하원 외교위원회는 2억2500만달러의 예산을 증액 조치했다. 또 권위있는 민간 외교 관련 기관인 외교협회(CFR)는 7개항의 대책을 내놓았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 지난 10여년간 미국은 밖으로는 경쟁자가 없는 단극체제에서 독주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그야말로 ‘좋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미국의 오만과 위선이 영국과 같은 전통적인 서유럽 우방국가로부터 인도네시아 같은 이슬람국가에 이르기까지 반미 감정을 급속도로 확산시켰으며 결국 9·11 테러를 계기로 자성의 목소리를 되찾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원인 분석에서 현황, 대책까지 제시했지만 지구촌에서 미국에 대한 ‘미움’을 줄이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피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이미지 개선은 국가 안보에 버금가는 중요한 사안으로 정치적 의지, 전반적인 전략 수립, 충분한 예산지원, 원만한 정책조정 노력 없이는 그 실현이 어려울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같은 나라도 오래 전부터 모두 외교 통상 문화교류에 있어 해외에서의 자국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고 총리실에서 ‘국가이미지 관리위원회’를 직접 운영해오고 있다.

우리는 월드컵을 계기로 마치 세계가 한국을 새로 탄생한 나라로 보기 시작한 것처럼 들뜬 분위기 속에서 서둘러 정부가 장밋빛 후속대책을 내놓는 것을 지난달 보았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경험한 것이지만 국가 이미지 개선 노력은 지도자의 지속적인 관심은 물론 정책 집행을 뒷받침할 조직과 인력, 예산 확보, 기관간의 업무협조, 장기 전략 수립 없이는 불가능하다. 회의 한번 소집한 뒤 언론에 발표하고 나면 흐지부지되고, 나중에 책임지는 이도 없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새 정권 출범 때는 으레 정부 조직에 손을 댔고, 그때마다 개악을 거듭해 왔다. 98년과 99년 우리는 두 여당의 나눠먹기식 조직개편을 통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기형아를 만들어냈다. 새해가 되면 정부조직 개편안은 또 한번 도마에 오를 것이다.

민간 부문의 역할이 점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정부 지도자의 관심과 주도적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새 정부는 국가 이미지 관련 기구만이라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었으면 한다.

우선 국정홍보처의 해외홍보원, 문화관광부의 해외문화원과 아리랑TV, 관광공사, 외교통상부의 국제교류재단과 국제협력단, KBS의 국제방송, 그리고 영자신문 매체를 효율적으로 통합 조정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지금부터 마련하자.

박영길 (주)CPR 사장·전 해외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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