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당, 정체성부터 분명히 하라

  • 입력 2002년 8월 11일 18시 43분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신당 창당 작업의 순서가 뒤바뀐 듯하다. 8·8 재·보선 참패 후 막다른 골목에 몰린 민주당으로서는 신당 창당 외에 다른 탈출구가 없다고 하지만, 얼마 전까지 집권여당으로서 국정의 1차적 책임을 졌던 공당이라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 먼저 ‘민주당의 실패’를 국민에게 솔직히 고하고, 신당이 지향하는 이념과 정책은 무엇이며 지금의 민주당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게 마땅하다.

신당의 취지에 동조하는 세력을 규합하는 것은 그 다음 순서다. 그러나 민주당은 온통 대선 흥행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듯하다. 세 불리기 식의 외연 확대에만 신경을 써서는 신당이라고 할 수 없다. 문패를 바꾸고 새 가구를 들인다고 해서 새 집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민주당 당무회의가 그제 중도개혁을 지향하는 신당 창당을 공식 결의한 것도 신당에 참여할 세력의 다양한 성향을 의식해 신당의 성격을 얼버무린 듯한 인상을 준다. 민주당 역시 중도개혁 정당을 표방해 왔다는 점에서 ‘중도개혁 지향’ 만으로는 신당의 명분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신당 논의는 애당초 시대적 요구나 국민적 여망에 바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집권을 막고자 하는 정치세력이 이른바 ‘반창(反昌) 연대’를 위해 시작한 게 아닌가. 하지만 무엇에 반대한다는 식이 아니라 무엇을 하겠다는 식의 비전을 제시해 국민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당은 성공할 수 없다.

정체성이 모호하고 불투명한 정당이나 정치세력 연대는 생명력이 길지 않다. 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이나, 97년 대통령선거 직전 성사된 ‘DJP 연대’ 모두 얼마 가지 못했다. 국민은 그때그때의 정략적 필요에 따라 명멸하는 또 하나의 단명 정당이 탄생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신당은 우선 정체성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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