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공자금 비리 '네탓 타령'

  • 입력 2002년 8월 11일 18시 36분


9일 서울지법 311호 대법정에서는 공적자금 비리로 구속기소된 보성그룹 김호준(金浩準) 전 회장과 나라종금 안상태(安相泰) 전 대표 등 10여명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김씨는 97년 11월 인수한 나라종금에서 2995억여원을 불법으로 대출받고 분식회계 등을 통해 568억원을 사기 대출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김씨와 안씨는 검찰 신문 과정에서 서로에게 부실경영의 책임을 떠넘겼다. 혐의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억울하다는 주장도 했다. 그들은 나라종금을 인수한 뒤 1주일 만에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체제 사태가 발생한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김씨는 “탄탄한 중견 의류업체였던 보성그룹이 나라종금 인수 직후 금융위기로 인한 대규모 예금 인출사태와 영업정지 처분 등을 막으려다 부도가 났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안씨 등은 “보성그룹이 나라종금을 사금고처럼 사용하면서 돈을 끌어다 쓴 결과”라고 반박했다. “모기업인 보성그룹이 무리한 외형 확장으로 연쇄 부도 위기에 처한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외부적 상황 탓’ 아니면 ‘네 탓’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공적자금 비리 특별수사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김씨는 나라종금이 1조4000억여원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아 영업을 재개한 뒤에도 수천억원대의 불법대출을 계속했다. 회사자금 30억원을 횡령해 정관계 로비자금으로 조성한 의혹도 받고 있다.

안씨의 경우 보성 측에 자금을 불법으로 지원해주면서 이에 반대하는 실무자들을 인사 조치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과정에서 나라종금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무려 2조998억원에 이르렀다. 결국 국민에게 부담이 돌아가는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이 이들의 불법행위를 뒷감당하기 위해 들어간 셈이다.

이 같은 공적자금 투입을 유발한 부실경영과 분식회계 범죄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네 탓’만 하고 있는 피고인들을 보면서 한심하다 못해 분노마저 느껴졌다.

이정은기자 사회1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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