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

  • 입력 2002년 8월 2일 18시 08분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인문학의 철학을 위하여/강영안 지음/256쪽 1만4300원 소나무

‘지식’이 인간의 얼굴을 가진다면 어떤 모습일까. 강영안 교수(서강대·철학)의 신간은 도발적인 제목에 걸맞게 우리 학문의 첨예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흘러 넘치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사색이나 학문내재적 반성이 없었음에 비춰볼 때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은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 우리 인문학이 진일보한 성취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지적처럼,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는 근대과학과 함께 엄밀한 탐구방법을 추구하는 학문 이념을 표방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것은 분명 과학이 되고 싶었던 인문학이 자초한 위기, 자신의 입지를 축소시킨 실용성과 자본주의의 논리에 충실한 현실에서 비롯된 결과다.

▼잃어버린 인격 되찾기 시도▼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근대에서 시작된 인문학의 원리에 이미 함축돼 있었다. 근대 인문학은 스스로 자신의 영역에서 일정 부분들을 배제해 버렸다. 그것은 자신의 기반인 ‘삶의 자리’, 바로 저자가 주장하는 ‘인간의 얼굴’이다. 이로써 인문학은 성찰을 결여한 학문 즉, 자신의 영역인 ‘인격적 인간 자체를 배제’한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그리스어 ‘페르소나(persona)’가 의미하듯이 인간이 지닌 모든 것, 그것을 상징하는 마스크를 가리킨다. 근대의 지식은 인간의 모든 것, 상징적으로 인간의 얼굴을 배제한, 객관성의 학문에 불과하다.

인문학의 위기는 여기에서 기인하기에 그에 대한 극복으로서의 지식은 잃어버린 인간의 얼굴을 되찾는 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근대 학문이 지닌 위기의 원인을 지적한 이 책은 근래 출간된 어느 저서보다 더 인문학의 위기와 극복 의지를 담고 있어 소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난 뒤 허탈한 느낌을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이 책이 지닌 너무도 편안한, 그 안온함 때문이다. 이 책은 자신이 지적한 문제를 다시금 되풀이하고 있다. 인문학의 철학, 또는 인간의 철학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저자가 지적한 바로 그 일을 직접,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찰적 학문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성찰은 필연적으로 지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학문체계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이 책 어디에서도 학문체계의 변화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단지 읽기와 쓰기에 대한 강조와, 인문학의 철학을 위한 대안을 독서론으로 대신하고 있다. 문제의 장엄함에 비해 대답은 너무나 한가하지 않은가.

저자는 텍스트를 향한 철학을 말하고 있다. 텍스트는 ‘쓰여진 책’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인문학이 자리한 터전은 현실이란 텍스트와 그에 대한 성찰이다. 그것을 위해 쓰여진 텍스트로서 책이 존재할 뿐이다. 읽기와 쓰기는 책의 존재에 의해서만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우리의 인문학을 위한 텍스트는 쓰여진 책뿐인가. 필자가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다가 중지한 것은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우리를 아쉽게 만든다. 이 책이 텍스트의 본질(Textuality)을 분석하고 성찰했다면 우리는 쓰여진 텍스트를 넘어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학문함을 되돌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에 따른 학문함이 훨씬 더 인문학의 철학을 위해 의미 있는 대답이 됐을 것이다.

저자가 대안의 예로 제시하는 주자의 독서론은 매우 존중할 만한 ‘성인의 도’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인문학의 철학’을 위한다면 나는 주자의 그 경건함을 되돌려드리고, 기꺼이 우리 인문학이 있어야할 괴로운 현실로 돌아오고 싶다. 그 현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그런 현실이 아니라 성찰하고 해석하며 아파하고 사유해야 하는, 살아있는 텍스트로서의 현실이다.

저자가 제시한 독서론에 대한 실존적 투신과는 상관없이 학문하는 우리가 이 책을 계기로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은 저자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수용하되, 함께 학문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학적 대결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런 논의와 만나고, 씨름하면서 아무런 전제 조건 없는 치열하고 고독한 학문함의 길을 의미한다. 이 책에 담긴 있을 수 있는 논의의 비약, 통일성의 결여는 평소 저자의 학문적 진지함과 논리의 정교함, 그가 제시하는 문제의식에 비춰볼 때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근대적 지식 이념을 거론하면서도 여전히 근대와 근대적 지식의 개념에 얽매여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쉽게도 저자가 제시한 문제의식의 ‘진정성’을 희석시키고 있다.

▼주자의 독서론 대안으로 미흡▼

이 책의 결론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오늘날 자연과학에 내재된 과학주의의 범람과 그것을 맹목적으로 이용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천박함과 저돌성이 너무도 광폭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학문세계와 학문의 자리는 이런 안온함에 잠겨들기에는 너무도 급박하다. 인간의 얼굴을 간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기에 인문학을 위한 이 책의 가치는 문제의 근원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 저자의 문제제기일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인문학의 위기를 학문내재적 원리에 따라 반성하고, 이로써 우리의 학적 지평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 근거할 때 이 책은 우리에게 감춰진 문제의 근원을 문제로 드러내는 ‘철학함의 저서’로 다가오게 된다.

신승환 가톨릭대 교수·철학 sehanul@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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