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美 더 홀社의 성폭력 반대 공익광고

  • 입력 2002년 7월 18일 16시 06분


깨알 같은 글씨로 씌어진 카피는 '나를 강간(rape)하라고 당신을 초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씌어진 카피는 '나를 강간(rape)하라고 당신을 초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1955년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라는 희대의 명판결문에 의해 면죄부를 받은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은 남성적 시각에서 바라본 정조 개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사례였다. 댄스홀이 전성기를 맞이했던 50년대 눈맞은 남녀들은 자연스레 댄스홀에서 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여성의 정조와 순결만을 강조하던 윤리적 잣대가 세상을 지배하던 그 시절의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인권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정조를 침탈한 죄’로 명문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달리 말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지켜준다’ 함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자기 논에 물대기 식의 억지 논리와 다를 게 없다.

그같은 보수 남성의 논리는 과거나 현재나, 한국 사회나 동서양의 다른 사회에서나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은 아직도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신분이나 유발 요인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매스컴에서도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되도록 늦은 밤에 다니지 말고 옷차림을 야하게 하지 말 것 등을 내세우며 여성들이 행동거지를 바르게 할 것을 강조해 왔다. 남성들이 성충동을 억제해야 한다거나 강간당한 한순간의 악몽이 여성의 인생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음을 이해시키는 데는 인색했다. ‘남자들에겐 치명적인 무기가 있으니 여성들이여 알아서 조심하라’는 것이 성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 인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잘못된 인식에 반기를 드는 광고가 있다. 강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바로잡기 위해 미국 뉴욕 더 홀사가 제작한 공익 광고. 비주얼은 상당히 도발적이다. 스트립 댄스를 하는 쇼걸이 가릴 곳만 겨우 가리고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가 하면 또 한 여성은 엉덩이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짧은 원피스를 입고 서 있다. 아무리 강간을 소재로 했다지만 공익 광고가 이렇게 다 벗고 나서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자. 이 광고를 포르노에서 성 철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남자의 끈적거리는 시선이 모아지는 부분에 보일 듯 말 듯 작게 처리된 세 줄의 카피에 있다. “나를 강간하라고 당신을 초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들이여 제발 착각에서 깨어나라!’는 것이 이 광고의 요지이다. 외설적 그림에 첨가된 카피 몇 줄의 촉매가 전혀 새로운 의미망을 형성해내는 화학작용이 놀랍다.

그런 관점에서 너무나 리얼한 상황을 포착한 비주얼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바로 이러한 장면이 강간을 허용한다는 의미로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왔던 그림 코드 아니던가. 신분이 쇼걸이라 해서, 노출이 심하다고 해서 그들을 마음대로 강간해도 좋고 그들의 정조를 내키는 대로 유린해도 좋다는 식의 해석은 남자만의 망상이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너무 예쁜 공익 광고만을 보아왔다.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과 함께 별 다섯개를 그려 주고 싶은 예쁜 광고들. 보기엔 좋지만 그런 광고들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 할 수 있을까. 공익 광고의 목적은 광고를 감상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정확한 사실을 일깨워 느끼게 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광고는 성폭력을 둘러싼 갑론을박에 대해 명확하게 시비를 가려내면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란 말장난이 엄정한 판결로 통용됐던 과거를 냉철하게 비웃는다. 법원의 판결문보다 훨씬 논리정연한 광고 판결문인 셈이다.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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