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교수되려면 돈 내시오˝

  • 입력 2002년 7월 10일 18시 23분


교수직에 지원한 경험이 있는 1072명을 대상으로 ‘교수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한국이 과연 세계 13대 경제대국이고,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나라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응답자의 16.5%가 대학 관계자에게서 이런저런 구실로 금품을 요구받았다. 액수는 5000만∼1억원이 54.2%로 가장 많았고 1억∼1억5000만원이 21.5%였으며 2억원 이상도 2.8%였다.

교수 채용에 돈이 오간다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드러난 사례는 별로 없다.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는 데다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낙인’이 찍혀 다른 학교에도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원자가 심사결과 공개를 요청할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지만 뒤탈이 두려워 의혹이 있어도 공개 요청을 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57.2%나 됐다.

문제의 대학들은 액수가 기대보다 적으면 ‘적임자가 없다’며 채용 계획을 백지화하고 채용공고를 다시 낸다. 채용공고에 세부적인 특정 전공이 명기된 경우 내정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고 나머지 지원자는 들러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총장 면접에 가서야 또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쟁자에게는 ‘어려운 과정을 어떻게 마쳤느냐’고 물으면서도 내게는 ‘고향이 어디냐’ ‘자녀는 몇이냐’와 같은 엉뚱한 질문만 하는 거예요.”(시간강사 L씨)

이런 문제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측면도 있지만 대학의 재정난에다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힌 교수사회의 폐쇄성에도 그 원인이 있다.

같은 학교 출신이 아니면 발도 붙이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4만여명의 시간강사들은 시간당 2만∼3만원의 쥐꼬리만한 강사료로 생계를 걱정하고 있는 게 대학의 현실이다.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학연 등을 배제한 선수관리로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놨다. 대학들이 능력 중심이 아닌 교수채용을 계속하는 한 한국은 학문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인철기자 사회1부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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