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유식/부패방지委에 조사권을

  • 입력 2002년 7월 10일 18시 23분


부패방지위원회와 검찰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부패방지위가 3개월 전에 고발한 전현직 고위 공직자 3명의 부패 혐의가 검찰에 의해 모두 무혐의 처리되고 이에 대해 부패방지위가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법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패배한 기관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상황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방위가 진정인들의 일방적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고발함으로써 절차상 잘못을 저질렀고 인권침해의 요소도 없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다른 하나의 해석은 검찰이 여전히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해 엄정하고 객관적인 조사 없이 불기소처분을 함으로써 모처럼 주어진 신뢰 회복의 기회를 또다시 놓쳤다는 것이다. 어떠한 해석이 진실에 가까운지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다만 이번 일을 두 기관의 ‘기 싸움’으로만 이해하거나 ‘완승 완패’의 결과 집착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우선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공직자 비리척결에 필수▼

민주주의에 있어 견제와 균형은 권력 분립의 핵심 원리다. 행정, 입법, 사법 등 3권 분립은 기본이고 같은 행정부 내에서도 견제와 균형을 통해 민주주의가 운영된다. 사정기관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검찰, 청와대, 국정원, 감사원 등 소위 사정기관이 국민의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한 것은 그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권력의 행사과정에서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초 새로 출범한 부패방지위는 ‘부패 통제에 대한 종합 정책 기구’로서의 역할 외에 기존 사정기관에 대한 견제의 기능을 부여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부패방지위와 검찰의 갈등은 권력기관 간의 힘겨루기 차원에서 폄훼해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검찰 등 기존 사정기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검찰로서는 그 견제에 익숙하지 않고, 부패방지위로서는 균형 감각을 갖기에는 아직 조직적 경험이나 기관의 신뢰도가 미약한 것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우선 부패방지위가 신고된 부패 행위에 대해 실체적 조사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현행 부패방지법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부패방지위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부패 통제 시스템의 불완전성은 근본적인 문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적절히 통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신뢰성 있는 부패 통제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사정기관에 대한 불신은 대부분 여기에서 비롯된다. 현재 ‘고위 공직자 비리조사처’ 등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으며 여야의 대통령후보도 앞다투어 이에 대한 원칙적 찬성을 표명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특별검사제의 성공적 운영을 통해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므로 차제에 과감한 제도 개선을 통해 부패 척결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검찰은 각종 게이트와 부패 수사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검찰의 고위 간부들이 비리에 연루되었던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승남 전 검찰총장, 김대웅 광주고검장, 김진관 전 제주지검장 등 바로 어제 검찰의 수뇌부를 구성했던 이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검찰이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이겨내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사정기관간 견제균형 절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검찰의 불기소 결정은 아쉬움을 남긴다. 좀 더 친절한 설명이 있었어야 했다. 진정인의 신빙성에 대해 시비를 걸거나 무고죄로 인지 수사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감정적 대응으로 비치기 쉽다. 검찰은 부패방지위가 재정신청에 앞서 요구한 불기소사건기록 열람, 등사 신청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불씨를 더 키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제 부패방지위와 검찰의 갈등은 일단 법원의 손에 공이 넘어갔다. 법원의 결정이 어떻게 나든 양 기관은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긴장감 있는 제도 개혁과 상호 견제 균형을 통해 양자 모두 진정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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