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69…아리랑(8)

  • 입력 2002년 7월 10일 18시 13분


조례를 하고 돌아온 학생들은 책상 위에 공책과 필통과 조선 총독부에서 발행한 수신서를 나란히 꺼내놓고 조선말 억양이 섞인 일본말로 조잘거리면서 담임이 교실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우철의 학년에는 남학생이 215명, 여학생이 35명. 50명 전후의 학급이 다섯 반 있는데 5반만 남녀가 섞여 있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교내에 울려 퍼지고 선생의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자, 학생들은 입을 꼭 다물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는 순간, “차렷!” 반장인 문기덕의 구령과 함께 등을 좍 폈다.

“경례!”

“안녕하십니까!” 학생들은 소리 맞추어 인사를 했다.

깃달린 검정 옷을 입은 담임 선생은 교단에 학생용과 교사용 수신서를 올려놓고서 학생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잘들 지냈느냐?”

“착석!”

자리에 앉은 우철은 신사 참배와 청소를 빼먹은 일로 혼이 나지는 않을까 싶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선생은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었겠지. 그 뜻을 아는 학생, 손 들어봐라”

히로시마 현 구레 시 출신인 선생의 일본말에는 사투리 억양이 섞여 있었다.

“네!” 마흔 여덟 명 전원이 오른 손을 들었다.

“김군” 선생은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는 김진범을 가리켰다.

“우리들은 천황폐하의 은총을 느꼈습니다”

“그밖에는?”

“저요!”

“박군”

이인용 책상에 나란히 앉은 박완태와 박경준이 동시에 일어났다.

“너 말고, 오른 쪽 박군!”

왼쪽에 있는 박경준이 얼굴을 붉히면서 자리에 앉았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 아저씨들이 정말 수고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어른이 되면 훌륭한 군인이 되어야 합니다”

박완태는 일부러 선생의 억양을 흉내내어 대답했다.

“그럼 그렇고말고. 자 교과서 4페이지. 읽을 줄 아는 학생?”

“저요!” 우철이 손을 들었다.

“제3, 효행. 니노미야 긴지로는 집이 너무나 가난하여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도왔습니다. 긴지로가 열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생활이 버거워 막내 아이를 친척집에 맡겼는데, 그 막내를 걱정하느라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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