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피터 벡/경제도 정치도 ˝하면 된다˝

  • 입력 2002년 7월 3일 18시 57분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공동 개최국이자 참가국으로서 한국이 거둔 놀라운 성과는 모든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워 할 만하다. 전세계는 한국팀의 예상치 못한 성공뿐만 아니라 경기장과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수백만명의 한국인들이 응원하는 모습에 놀랐다.

나는 한국 대 미국의 예선전 경기를 서울 광화문의 붉은 악마들 사이에서 보았다. 그곳은 15년 전 내가 한국에 처음 갔을 때 민주화 시위를 지켜보던 장소 부근이었다. 나는 팬들의 구호(처음엔 나는 “오 필승 코리아”를 “오 미스 코리아”로 잘못 들었었다)를 들으면서 한국이 민주화 직전에 있던 15년 전의 구호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월드컵 열기를 정책으로▼

한번은 세종로사거리 지하도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몇몇 대학생들이 내게 교보문고에 가서 차를 한잔 마시며 영어회화 연습을 하자고 요청했다. 그들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얼마나 증오하는지에 관해 말했다. 그 무렵의 학생들은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된 시위에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지지했다.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본 1991년 시위 때 학생들은 “타도 노태우, 해체 민자당”을 외쳤다. 나는 그때 사용된 최루탄 가스통을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인들은 거의 전례 없이 그들의 조국을 위해 무조건 환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월드컵은 끝났다. 이젠 미래를 바라보며 한국의 넘치는 긍지를 다른 분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어떻게 하면 한국인들의 열정과 열망을 지켜갈 수 있을까. 오늘날의 프랑스를 보노라면 이 나라가 4년 전 월드컵을 개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어렵다. 프랑스가 우승했을 때 100만명이 넘는 프랑스인들은 이번에 한국인들이 그랬듯이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했다. 그때는 마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의 프랑스는 예선에서 탈락한 프랑스 축구팀만큼이나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경제는 여전히 둔화된 상태이고 정치는 반이민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가까이 한국의 예를 봐도 그렇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의 낙관론은 이제 희미해졌다. 과연 햇볕정책이 현정권의 임기 말까지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도 안되겠지만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고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 한국 내부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정치 분야만큼 대중들의 열망과 현실 사이의 단절이 큰 곳은 없다. 가장 큰 과제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현재 분위기를 효율적인 정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월드컵에는 열기를 보여줬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내가 최근 서울에서 머문 몇 주 동안 가장 놀라웠던 것은 지방선거가 실시된다는 사실을 거의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이 월드컵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투표율이 50%에도 못 미친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더구나 선거일은 임시공휴일이었다.

한국이 당면한 경제적 도전과 불확실성은 심대하다. 월드컵은 세계 속에서 한국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기여했지만 한국의 금융과 기업구조는 여전히 개혁되어야 할 부문이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최근 한국의 금융 시스템을 79개 국가 중 70위로 평가했다. 한국의 재계 지도자들과 근로자들은 축구팀을 본받아 한국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국제 환경 속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다시 헌신해야 한다.

▼연줄 등 낡은행태 버릴 호기▼

서해교전은 월드컵 기간 동안 대두됐던 남북관계 개선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북한은 끝내 이번에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컨트롤해야 할 것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대한민국”을 연호한 수백만명의 팬들은 과연 지역감정을 과거의 일로 만들었는가. 한국의 지도자들은 지겨운 지역주의 정치에 의존하는 대신에 새로운 국민적 정신으로 국가적 일체감을 형성해야 한다.

한국이 축구 경기장에서 거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이젠 이 같은 성공과 ‘하면 된다’는 ‘캔 두(Can Do)’ 정신의 부활을 사회 각 분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찾는데 집중할 때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인들이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것은 한국이 다음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선 서열과 연줄에 의존하지 않고 낡은 행태를 파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축구팀은 그 결과가 얼마나 극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피터 벡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실장 beckdong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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