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반순이의 비극

  • 입력 2002년 6월 28일 18시 47분


지리산 문수골에 반달곰 네 마리를 방사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멸종 위기에 놓인 반달곰의 개체 수를 늘려 생존 능력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태어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끼 곰 네 마리를 어미에게서 떼어내 5개월의 야생 적응 훈련을 거친 뒤 산에 풀어놓았다. 한 마리는 사람의 손길을 잊지 못하고 등산객을 따라다니다 사육장으로 돌아왔지만 나머지 세 마리는 목에 매어 놓은 전파발신기로 움직임이 잡혀 그럭저럭 적응하고 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세 마리 중 유일한 암컷인 ‘반순이’가 실종됐다고 한다. 처음 방사된 문수골 근처 바위 밑에 제 목에 걸렸던 전파발신기만 덩그러니 남긴 채.

▷반순이는 어떻게 됐을까. 방사 이후 하루 행동반경이 500m도 채 안됐고 마지막으로 움직임이 확인된 게 작년 12월 초라는 점으로 미루어 동면에 들어가기 전 굶어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밀렵꾼의 소행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남은 전파발신기에 낫 같은 예리한 것으로 잘린 자국이 있었다고 하니 밀렵꾼은 아니더라도 반순이의 주검이 사람 손에 들어간 것만은 분명하다. 아무리 웅담이 금값이라고는 하지만 채 자라지도 않은 어린 곰의 웅담까지 탐내야 했을까.

▷미국 아칸소주는 치밀한 계획으로 반달곰을 멸종 위기에서 구해냈다. 어미 곰과 새끼 곰을 함께 방사시켜 어미가 새끼를 돌보며 야생에 적응토록 했고 방사하기 전 곰이 사람 냄새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여러 훈련단계를 거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풀어놓은 곰을 추적한다며 호들갑을 떨고 동면에 들어가는 장면까지 특집방송이니 뭐니 하며 TV에 내보냈으니 이쯤 되면 ‘반달곰이 여기 있소’ 하고 가르쳐 주는 격이다. 노련한 밀렵꾼은 화면에 잡힌 바위 모양만 보고도 어디라고 찍어낸다지 않는가.

▷오래된 영화 ‘야생의 엘자’는 아프리카의 한 동물관리인 아내가 어미 잃은 암사자를 데려다 키워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이야기다. 실화를 옮긴 이 영화는 야생동물 방사가 얼마나 힘든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반순이의 실종은 인기만 좇는 한탕주의와 당국의 관리 부재가 빚어낸 비극이다. 환경부는 2011년까지 지리산 반달곰을 50마리로 늘리겠다고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방사해봤자 또 다른 반순이만 나올 뿐이다. 애완동물을 안 키우는 집이 드물고 강아지가 식구처럼 대접받는 세상이 아닌가.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마음이 ‘반순이의 비극’에 얼마나 상처받을지 걱정이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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