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차연계론'으로 본 6월 항쟁 '사회이론의 구성'

  • 입력 2002년 6월 28일 18시 10분


◇ 사회이론의 구성 /정태석 지음 / 303쪽 1만8000원 한올아카데미

사회이론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구조와 행위의 관계다. 지난 3세기에 걸친 사회이론의 역사에서 구조가 먼저냐, 행위가 먼저냐의 문제는 언제나 치열한 논쟁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만큼 이 쟁점에 대한 토론은 이른바 대가(大家)들이 독점해 왔다.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의 알튀세, ‘합리적 선택이론’의 엘스터, ‘구조화이론’의 기든스, ‘아비투스론’의 부르디외 등 당대를 대표하는 사회이론가들은 구조와 행위에 대한 독자적인 이론을 제출해 왔다.

이 책은 바로 이 문제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 책의 기본텍스트는 저자가 제출한 박사학위논문(서울대 사회학과)이다. 하지만, 이번 출간을 계기로 적지 않은 수정을 가한 흔적이 눈에 띈다.

책의 주요 내용은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구조와 행위의 이분법을 둘러싸고 그 동안 진행된 다양한 토론들을 살펴본다. 기존 이론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이론적 대안으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무젤리스의 ‘교차연계’의 관점이며, 이에 대한 비판적 재구성을 모색한다. 이어 저자는 이 ‘교차연계 방법론’의 이론적 적용으로 알튀세의 ‘이론적 반인간주의’와 엘스터의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접합해 포괄적인 문제틀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경험적 적용으로 1987년 6월 항쟁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을 시도한다.

이런 이론적 모험을 통해 저자가 이끌어내는 결론은 세 가지다. 첫째로 구조와 행위, 거시와 미시, 사회와 개인의 이분법은 엄밀히 구별해야 한다. 둘째, 알튀세의 이론과 엘스터의 이론은 서로 대립시키기보다 거시적 분석과 미시적 분석이라는 해석을 통해 연계시키고 접합시킬 필요가 있다. 셋째, 구조와 행위 및 거시와 미시의 교차연계 방법론은 기존의 설명방식에 비해 훨씬 복합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요컨대 교차연계 방법론이야말로 분석대상으로 사회현실이 갖는 복합성에 대한 포괄적인 문제틀이라는 것이 저자의 핵심 아이디어다.

책을 통독하고 나서 먼저 든 생각은 기존 사회이론에 대한 정리가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다. 특히 알튀세와 엘스터 이론에 대한 국내에서의 오해와 비판에 대한 정정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가 지적하듯 거시와 미시의 프리즘으로 본다면 알튀세와 엘스터 이론은 소박한 구조결정론과 행위중심론에서 벗어나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사회이론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교차연계 방법론이 갖는 매력이 잘 부각되는 것은 6월 항쟁에 대한 재해석이다. 저자는 6월 항쟁에 대한 기존의 구조론적 해석(정성진, 김호기)과 행위론적 해석(임혁백)이 각각 일면적 분석의 한계를 갖는다고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 6월 항쟁을 통해 개인 행위들이 어떤 수준에서 변화했고 어떤 수준에서 변화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어떤 수준의 관계가 재생산되거나 변형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평자는 이런 저자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이론구성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교차연계 방법론의 설득력이다. 저자는 이 문제틀의 착상을 무젤리스 이론의 비판적 독해에서 빌려온다. 그 비판의 초점은 “행위자가 다(多)수준적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행위 자체가 다수준적인 점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지만 행위자와 행위에 대한 이런 구분은 재고의 여지를 남긴다. 무젤리스가 행위가 아닌 행위자를 구조의 대응 범주로 선택한 것은 하나의 ‘분석적인 전략’이다. 이론의 구성에서 사회현실에 내재된 복합성의 추상화는 불가피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와 연관해 6월 항쟁의 재해석도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의 문제틀은 분명 거시적 장기적 과정으로서의 6월 항쟁의 전체상(全體像)을 그리는 데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릇 모든 분석이 사회의 전체상에 대한 해명만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이론적 쟁점으로 바꿔보면 거시적 요인과 미시적 요인이 중첩결정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추상수준과 시간지속에 따라 그 관계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는 점 또한 주목돼야 한다. 사회현실의 역동성과 복합성을 고려할 때 구조의 이론적 제국주의나 주체의 이론적 제국주의는 당연히 거부돼야 한다. 하지만 모든 분석이 종합적인 설명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 포괄적 문제틀은 모호한 절충주의의 덫에 빠질 위험이 존재한다.

평자의 이런 의문이 물론 이 책이 갖는 의미를 크게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이 기본적으로 서양학문인 만큼 사회이론에 대한 탐구는 적잖은 인내를 요구한다. 더욱이 유행하는 서구담론의 ‘수집상 내지 소개상’이 아닌 경우에 그것은 학문적 고독 또한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이 책이 주목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적 무관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자는 이론적 관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독자적인 사회이론의 구성을 모색한다. 한 패기만만하고 사려 깊은 ‘한국적 사회이론가’의 등장을 알리는 책이다.

김 호 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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