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승부차기

  • 입력 2002년 6월 17일 18시 55분


축구 선수들에게 가장 피 말리는 순간은 아마도 경기 중 페널티킥을 차게 되거나 경기에서 비긴 후 승부차기에 들어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월드컵 같은 큰 경기라면 더욱 그렇다. 실축(失蹴)할 경우 개인에게 쏟아질 비난의 강도를 미리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수들은 승부차기를 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는 엄청난 두려움을 느낀다고 실토한다. 엊그제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월드컵 16강전에서 10명 중 5명이 승부차기에 성공하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승부차기는 통계상 53 대 47로 선축한 팀의 승률이 약간 앞선다. 또 실패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 골키퍼의 몸놀림보다 공의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는 키커보다는 ‘밑져야 본전’인 골키퍼의 부담이 다소 적을 것이란 게 일반적 분석이다. 그러나 경기 승패가 공 하나에 달려 있는 마당에 사력(死力)을 다하지 않는 골키퍼는 없다. 키커와 골키퍼의 팽팽한 대결을 지켜보는 관객들 또한 긴장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월드컵 승부차기처럼 환호성과 비탄감이 가장 짧은 시간에 속도감 있게 전환되는 드라마는 없는 것 같다.

▷월드컵에 승부차기가 도입된 것은 1982년 스페인 대회 때부터다. 그때까지는 대개 추첨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98년 프랑스대회까지 승부차기를 한 팀은 15개 팀으로 독일 아르헨티나는 3번을 모두 이겼고 이탈리아는 3번, 멕시코는 2번을 모두 졌다. 이들 나라 중 킥 성공률이 최하위인 팀은 어제 미국과의 16강전에 진 멕시코로 86년, 94년 두 차례 선수 7명이 나서 두 골밖에 성공시키지 못했다. 이후 멕시코팀은 ‘승부차기 공포는 국가적 망령’이라며 이를 극복하는 특별훈련까지 해오고 있다.

▷오늘 우리팀과 16강전을 갖는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3차례나 우승한 강팀이지만 90년 이후에는 승부차기를 통해 내리 고배를 든 기록을 갖고 있다. 94년 미국대회의 경우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 로베르토 바조의 허망한 실축으로 우승컵을 브라질에 넘겨주고 말았다. 그때 망연자실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던 이탈리아 선수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번 한국-이탈리아전에서 두 나라가 비겨 승부차기로 간다면 이탈리아팀엔 그때의 악몽이 다시 떠오를지 모른다. 이탈리아팀에 그런 심적 고통을 주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본 경기에서 우리가 이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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