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칼럼]길거리 응원의 숨은 뜻은?

  • 입력 2002년 6월 17일 17시 58분


한국의 대규모 거리 응원이 세계적인 화제를 낳고 있다. 외국 언론들은 ‘놀랍다’ ‘이런 폭발적인 열기는 처음 본다’며 거리 응원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거리 응원의 단합된 힘과 뜨거운 열기에 잔뜩 고무되어 있는 듯 하다.

사회 일각에서는 거리 응원에서 나타난 한국민의 잠재력과 단결력을 다른 분야까지 확대 발전시켜 나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스포츠가 국민을 결집시키는 힘은 이미 검증이 끝난 것이므로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거리 응원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이 아닌가 싶다.

많은 국민이 거리 응원에 참여한 것은 48년간 이루지 못했던 ‘월드컵 무승(無勝)’의 한(恨) 때문이었다. 홈구장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첫 승리도 거두고, 내친김에 16강에도 진출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의 응원 열기는 그런 비원(悲願)에다가 대중의 억눌렸던 감정까지 더해져 한꺼번에 분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인의 얼굴은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어딘지 모르게 무겁고 딱딱하다. 한국인에게 지난 세월은 신발 끈을 조여가며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가난도 극복해야 했고 민주화도 이뤄내야 했다. 이처럼 숨막히는 생활의 스트레스를 시원스레 풀어버릴만한 ‘카타르시스의 장(場)’도 없었다.

거리 응원을 위해 쏟아져 나온 수백만명의 인파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거리 응원은 우리의 지나온 삶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축제는 축제대로 마음껏 즐기자. 하지만 축제의 밤이 끝난 뒤 우리 사회의 건강성 확보를 위한 해법도 차분한 마음으로 찾아낼 필요가 있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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