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新聞]中津江に學ぶ國際交流

  • 입력 2002년 6월 14일 18시 39분



▼나카쓰에무라에서 배우는 국제교류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오이타현 나카쓰에무라1). 그러나 이 곳이 예전 10년간에 걸친 처절한 투쟁의 무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을의 동쪽에 구마모토현과 경계를 이루며 흐르고 있는 지쿠고강. 여기에 건설된 시모우케댐을 둘러싸고 60년부터 70년까지 격렬한 건설반대운동이 벌어졌다. 리더는 강 건너편의 오구니마치에 사는 무로하라 도모유키씨. ‘벌집 투쟁’2)이라고 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나중에 이 투쟁을 ‘성채에서 버티다’라는 소설로 펴낸 나카쓰시에 사는 작가 마쓰시타 류이치씨는 “국가가 휘두르는 공공성이라는 불가침의 성역에 선구자적인 입장에서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 평범한 노인으로 변방에 살고 있던 무로하라 도모유키였다”고 썼다.

사람들이 변방이라고 생각하는 땅도 시대가 바뀌면 각광을 받는 땅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벌집 투쟁’은 땅 한평 운동이나 입목(立木)트러스트운동3)으로 이어졌고, 환경보호운동과 쓸데없는 공공사업을 비판하는 전형적인 예로서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사권(私權)과 공권(公權)’을 다툰 75건의 재판투쟁에서 패한 무로하라씨는 숨지기 한해 전에 “이 곳에 사방을 유리창으로 한 천문대을 만들어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카메룬대 독일전이 벌어졌던 11일 밤 나카쓰에무라의 하늘에는 구름 틈새로 목걸이를 박아놓은 것처럼 많은 별들이 보였다. 환성은 결국 비명으로 바뀌었지만 마을사람들의 표정은 만족스러운 듯 했다.4)

무로하라씨는 “공공사업이라는 것은 이치에 닿고, 법에 맞으며, 인정(人情)에도 거슬리지 않아야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마을사람들의 미소띤 얼굴을 보면서 이 말은 국제교류에도 그대로들어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카야마 다카시 편집위원

정리〓심규선 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

<편집자주>

1)나카쓰에무라는 주민이 1300여명밖에 안되면서도 카메룬팀의 훈련캠프지를 유치한데다 카메룬팀이 예정보다 닷새나 늦게 오면서 마을주민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이 매일 전국으로 중계됐다.

2)댐 건설 반대투쟁을 벌이던 사람들이 만든 농성장이 벌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

3)땅이나 나무의 소유권을 잘게 쪼개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행정수속에 시간이 걸리도록 한 토지수용법 저항운동.

4)카메룬은 이날 독일에 0-2로 져 1승1무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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