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KDI의 첫 공채 원장이었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KDI 보고서 발표 등으로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이진순(李鎭淳) 전 원장 등과 결선투표까지 벌인 끝에 KDI를 이끌어갈 책임을 맡았다.
재정경제부장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정보통신부장관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그가 KDI 원장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는 정부의 사전 내정설 등 잡음이 적지 않았다. 2000년 4·13 총선 때 경기 성남 분당에서 여당인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떨어진 데 따른 ‘자리 봐주기’란 비판도 많았다.
그는 KDI를 맡은 뒤 “KDI를 명실상부한 한국경제의 ‘싱크탱크’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또 KDI 원장직을 다음 선거 출마를 위한 ‘징검다리’로 여기는 게 아니냐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해명과 각오’를 털어놓았다. 그는 “4·13 총선에 나간 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며 “정치는 부탁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아 내게는 맞지 않으며 다시 정치판에 뛰어들 생각도 없다”고 강조해 왔다.
강 원장이 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는 것은 본인이 판단할 문제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자질과 경력이 이번 군산 보선에 나올 다른 출마예정자들보다 떨어진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의 처신은 정통 경제관료로 출발해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까지 올랐던 ‘공인’으로서 지나치게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KDI 원장 중도사퇴로 KDI의 위상과 연구원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국책 연구기관장 공채의 취지도 빛을 바래게 했다. 그는 ‘공인의 무게’라는 의미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권순활기자 경제부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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