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강봉균씨의 정치행보

  • 입력 2002년 6월 9일 22시 32분


한국의 대표적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갑자기 ‘수장(首長) 유고’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3월 취임해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겨 놓은 강봉균(康奉均) 원장이 8월로 예정된 전북 군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입후보하기 위해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KDI의 첫 공채 원장이었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KDI 보고서 발표 등으로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이진순(李鎭淳) 전 원장 등과 결선투표까지 벌인 끝에 KDI를 이끌어갈 책임을 맡았다.

재정경제부장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정보통신부장관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그가 KDI 원장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는 정부의 사전 내정설 등 잡음이 적지 않았다. 2000년 4·13 총선 때 경기 성남 분당에서 여당인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떨어진 데 따른 ‘자리 봐주기’란 비판도 많았다.

그는 KDI를 맡은 뒤 “KDI를 명실상부한 한국경제의 ‘싱크탱크’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또 KDI 원장직을 다음 선거 출마를 위한 ‘징검다리’로 여기는 게 아니냐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해명과 각오’를 털어놓았다. 그는 “4·13 총선에 나간 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며 “정치는 부탁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아 내게는 맞지 않으며 다시 정치판에 뛰어들 생각도 없다”고 강조해 왔다.

강 원장이 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는 것은 본인이 판단할 문제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자질과 경력이 이번 군산 보선에 나올 다른 출마예정자들보다 떨어진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의 처신은 정통 경제관료로 출발해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까지 올랐던 ‘공인’으로서 지나치게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KDI 원장 중도사퇴로 KDI의 위상과 연구원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국책 연구기관장 공채의 취지도 빛을 바래게 했다. 그는 ‘공인의 무게’라는 의미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권순활기자 경제부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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