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24)]베트남 깟 띠엔 국립공원

  • 입력 2002년 6월 7일 18시 59분


깟 띠엔 국립공원을 가르며 흐르는 동나이강에서 바라본 강변의 열대자연림[사진=김동주기자]
깟 띠엔 국립공원을 가르며 흐르는 동나이강에서 바라본 강변의 열대자연림
[사진=김동주기자]

야생의 열대림으로 덮인 베트남 남부지역의 정글은 기나긴 전쟁의 악몽을 이미 잊은 듯 했다. 1975년 종전후 27년. 호치민(옛 사이공)시 외곽의 숲은 언제 그런 참혹한 일이 이 곳에서 벌어졌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명력이 가득찬 녹원(綠園)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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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시에서 서쪽으로 70㎞,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곡창지대이자 메콩강에 인접해 있는 ‘구치’ 마을. 이 마을은 민족해방을 외치던 전사들의 주요 활동공간이 되었던 곳이다.

“이 숲이 전쟁터였다는 게 믿어집니까. 아마 저도 아홉 살때 전투를 목격하지 않았다면 그랬을 겁니다.”

부친은 전사하고 폭격으로 어머니를, 고엽제 후유증으로 동생을 잃었다는 판 탄 융씨(36)는 젊은 아베크 족과 외국 관광객에게 숲과 땅굴을 안내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산의 모습은 이같은 자연림 상태의 정글이다. 정글은 농민이 대다수인 베트남인에게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자원의 보고이자 오랜 혼란기에는 안심하고 숨을 수 있는 피난처 였다.

구치 마을은 숲 사이에 흩어진 자연부락을 근거지로 삼아 버티는 베트콩을 섬멸하기 위해 미군이 B52 폭격기를 동원, 어느 곳보다 많은 융단 폭격과 소이탄 공격을 퍼붓고 맹독성 고엽제를 살포해 숲을 없애려 했던 곳이다. 1만여명의 미군이 12회나 점령작전을 폈으나 프랑스 식민지배세력에 맞서던 1950년대 이후 약 30년간 호미와 삼태기 만으로 숲 아래에 파놓은 총연장 270㎞의 땅굴 때문에 끝내 실패했다.

전쟁 통에 거목은 모두 사라졌지만 종전후 30년 가까운 세월은 높이 20m가 넘는 숲을 다시 키워냈다. 숲 곳곳에 폭탄으로 생겨난 웅덩이와 체구가 큰 서양인은 통과하기 힘든 땅굴 그리고 불발탄과 탱크 잔해, 격추된 헬기 등을 모아놓은 박물관이 없었다면 이 정글을 전쟁터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숲은 그토록 자신을 학대했던 인간을 이미 용서한 것 같았다.

사이공에서 동북쪽으로 150㎞ 떨어진 깟 띠엔 국립공원. 메콩강과 함께 베트남 남부 최대의 곡창지대를 형성해주는 주역인 동라이강을 끼고 만들어진 이 공원은 베트남의 정글이 더 이상 ‘증오의 숲’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메콩강 지류에 소규모 가두리양식장을 겸한 수상 가옥이 즐비하다. 베트남 남부에 비옥한 평야지대를 만들어낸 이 강의 발원지는 멀리 티벳고원의 산악지대이다. [사진=김동주기자]

이 공원은 해발 130∼600m가량으로 베트남 남부 평야지대에서는 보기 드물게 ‘산’ 모양을 갖추고 있다. 농업농촌개발부 산하의 이 공원 관리소장인 트란 반 무이씨는 “전란을 겪으며 자취를 감췄던 코뿔소가 수년 전에 다시 발견됐다”면서 유네스코가 2001년11월 이 지역을 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고 소개했다.

공원내에는 통틀어 500여가구에 불과한 소수민족인 ‘쩌우마’족이 살고 있다. 농사 일이 없어 검은 소들은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으며 여인들은 공동작업장에 모여 직접 뽑아낸 명주실로 손가방이나 동전지갑 등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마을 가운데에는 나무로 엮어 만든 십자가가 걸린 교회가 있었다.

공원관리소의 팜 후 칸 연구기술과장은 “공원지역 숲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이 화전농을 일구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도록 관개수로를 내 3모작이 가능하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천혜의 임산자원을 개발하는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한국과도 98년 임업투자협약을 맺었다. 잡목이 우거진 자연림 대신 고무나무, 펄프원료로 사용되는 속성수 등을 심어 소득증대와 함께 숲을 확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한국 산림조합중앙회가 현지에 설립한 회사인 ‘산림조합 비나’는 호치민 동남쪽 ‘쑤엔목’ 일대에 6000㏊, 1800만평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땅에 인공조림을 해놓고 있다.

‘산림조합 비나’의 이근종 사장은 “열대성 기후 때문에 보리처럼 연약한 묘목이 심은 지 5년만에 높이 15m, 지름 30㎝로 자라나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면서 “해마다 돌려가며 벌목해 칩(펄프 가공 전 단계의 나무조각)형태로 한국행 배에 선적할 때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조림지 근로자 응엔 반 하이씨(56)는 “벌목한 곳에는 다시 묘목을 심는데 땅을 놀리지 않기 위해 나무 사이에 콩 옥수수 등을 심어 수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대기후의 특성을 살린 인공조림지 개발 정책을 통해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사회에 필요한 자원을 생산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지역은 바로 ‘지속가능한 개발’의 실천 현장이기도 했다. 인공조림지 감시 초소에서 내려다 본 광활한 인공의 수해(樹海)는 베트남의 정글과 인간의 관계가 ‘학대와 착취’에서 ‘공생과 조화’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깟 띠엔 국립공원(베트남)〓조헌주 기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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