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8…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28)

  • 입력 2002년 5월 23일 18시 08분


무당2 (방울을 소리를 확인하듯이 흔들면서) 이 쪽 삼촌이나 그 쪽 삼촌이나 보통내기가 아니니까. 아무 말 안 해도 다 알아, 눈에 다 쓰여 있어. 하하하하하. 이 삼촌은 마음씨가 착해. 일본에 돌아가면 이 삼촌 얘기 꼭 해서, 다들 만날 수 있게 해. 할배가 그러길 바라고 있어. 모두들 할배 자식이니께.

무당3 (며칠이나 자지 못한 것처럼 지친 목소리로) 어머니한테 몸조심하라고 전하거라. 올해는 특히 비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면 안 된다고. 보약 지어 드려. 보약, 보약이야. 무사히 해를 넘기면 한동안은 괜찮을 거다. 너거 아들은 머리가 좋아. 머리가 좋으니까 학교도 좋은 데 보내고(전기가 나간 것처럼 입을 꾹 다문다). 다 내다 태워.

유미리 (무당의 두 손을 꼭 잡고) 감사합니다.

유미리와 이신철은 불러들인 망자를 보내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무당을 따라 밖으로 나간다.

무당1 돌아보면 안 돼.

무당은 막걸리를 땅에 뿌리고 씻김굿에 사용한 망자용 종이 저고리, 지패(紙牌), 금줄, 지전(紙錢) 등을 불사른다.

이신철과 유미리는 불길을 향하고 합장한다.

불길 속에서 저고리 깃에 들어 있던 넋①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재가 된다.

연기가 하늘까지 똑바로 올라가면 하늘이 소원을 들었다는 뜻이라는데, 연기는 새벽 어둠에 빨려들어가 행방이 묘연하다.

유미리는 불길 속에서 막을 내리는 것과 막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그 때, 기다렸다는 듯이 비의 막이 내려온다.

불길이 비에 지워진다.

되돌아온 혼들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비가 되어 그 머리칼을 그 살을 쓰다듬는다.

이신철은 죄인처럼 머리를 숙이고 타다 남은 이우철의 바지 저고리를 응시하고 있다. 유미리는 손바닥으로 비를 맞는다. 비가 손바닥을 적신다. 손바닥에 집게손가락으로 이름을 쓴다. 유미리.

커튼 콜을 청하는 관객들의 박수소리처럼 빗소리가 거세진다.

①넋 - 하얀 종이를 접어 사람 모양으로 오린 것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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