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

  • 입력 2002년 5월 17일 17시 41분


지난 3월 미국에서 태어난 일란성 네 쌍둥이
지난 3월 미국에서 태어난 일란성 네 쌍둥이
◇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스튜어트 올샨스키 외 지음 전영택 옮김/312쪽 1만원 궁리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지난 한 달여간 중학교 때부터 함께 몰려 다니던 가까운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연달아 돌아가셨다. 학창 시절 예고도 없이 갑자기 몰려가도 늘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 환한 웃음을 이제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것은 못내 아쉽지만 대부분 여든 남짓 사셨으니 기대 수명을 다 채우고 가신 비교적 ‘행복한’ 분들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늙는 것을 한탄하지 말라. 수많은 사람들은 그 특권조차 누리지 못한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삶이란 왜 영원할 수 없는가 묻는다. 하지만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 바로 한계성이다. 적어도 이 ‘지구’라는 행성의 생명체는 누구나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영생은 진시황만의 꿈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종교가 다 한계성 생명에 영생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복제인간의 탄생이라는 가공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배아 연구를 엉거주춤 허용하려는 것은 다름 아닌 영생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생물인구통계학자인 저자 올샨스키는 1년 전 나의 하버드대학 동료이자 유명한 노화학자인 스티븐 오스태드와 인간의 최대수명을 놓고 공개적으로 내기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세한 내기 내용이 당시 우리 나라 일간신문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오스태드는 앞으로 150년 안에 150세까지 사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한 반면, 저자는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믿고 있다. 놀라운 생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의 최대수명이 왜 쉽사리 늘지 않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들을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인다.

이른바 ‘생명표의 엔트로피’ 현상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의 기대 수명을 85세 이상으로 늘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20세기 초 미국인들의 기대 수명은 45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공중위생과 의학의 발달로 사망률이 급격하게 줄어 불과 100년만에 78세로 늘었다. 하지만 이제 사망률을 줄여 기대 수명을 늘이는 것은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 저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50세 이전에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사망률 0) 기대 수명은 겨우 3.5년밖에 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나는 옛친구를 배반하고 저자들에게 돈을 걸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들이 우리의 기대 수명이 절대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의 끝 부분이 닳아 없어지는 걸 방지하는 방법을 찾는다거나 장수유전자를 발굴하지 못하란 법은 없다.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 연구진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전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운동을 제외한 그 어느 노화 방지약이나 수명 연장제도 다 소용이 없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병을 안고 그저 오래 살기만 한다고 좋을 리 없다. ‘건강 악화와 수명 연장을 바꾼 거래’는 결코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성공적인 노화’이다. 이른바 건강 수명을 늘여야 한다.

80세든 150세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질병이나 노쇠에 시달리지 않고 정력적으로 살다가 어느 날 별 고통 없이 훌쩍 떠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 아침에는 마지막으로 화끈한 섹스도 한번 즐기고 말이다.

최 재 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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