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인권위 좌담]"독자 구제 신청전 자체 검증정치 필요"

  • 입력 2002년 5월 17일 00시 13분


《언론의 자율적 보도피해 구제장치로 동아일보 독자인권위원회(이하 독자인권위)가 지난해 4월 첫 발족한 것을 계기로 올 들어 MBC(시청자주권위원회) 조선일보(독자권익보호위원회) 등이 잇따라 같은 성격의 피해구제기구를 출범시켰다. 국내 언론의 자체적인 보도피해 구제제도 도입이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본보 독자인권위원들은 16일 본사 회의실에서 ‘보도피해 구제장치의 정착방안’에 대해 좌담을 가졌다.

<사회〓김종완 본사 독자서비스센터장>》

-저희 독자인권위는 지난 1년간 동아일보 기사와 관련해 피해구제신청이 들어온 사안에 대해 정정보도 1건, 반론보도 1건을 심의 의결하고, 2건은 관련 부서와 신청자간의 대화를 주선해 화해조정이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지난 1년간의 활동을 자체평가해 본다면….

▽김영석 위원〓언론자유 신장과 개인의 인격권 보호라는 상충되는 주제 속에서 언론인의 직업윤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요즘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한 소송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어 기자들이 ‘소송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가 법이나 외부기관의 통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언론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동아일보가 독자인권위를 만들어 언론사 스스로 독자의 피해구제에 나섰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습니다.

▽양창순 위원〓지난 1년 동안의 심의 건수가 많지 않아 아쉬움이 있지만 그만큼 동아일보가 독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될 수도 있겠네요.(웃음) 정신과 환자들이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만 대화를 하고 싶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얘기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보겠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독자인권위도 상징적인 면에서 강자인 언론사가 대화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지요.

▽이종왕 위원〓언론사가 보도로 개인의 권익을 침해했을 때 자율적으로 나서서 구제하는 장치를 둔 자체에 우선 의미가 있겠습니다. 모두 4건의 심의 및 화해조정이라는 가시적 성과도 있는 데다 언론계 전반으로 이 제도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요.

-타율적인 언론중재위원회에 비해 자율기구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언론사의 보도피해 구제 제도가 어떻게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용훈 위원장〓독자의 구제신청을 접수해 심의 의결하는 수준의 사후적 장치만으로 독자의 신뢰를 얻어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에는 미흡하다고 봅니다.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 등 객관성을 인정받는 공적기구가 존재하는 실정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기사 작성단계, 즉 보도되기 이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견제장치까지 할 수 있는 기구로 확대 발전시킨다면 독자로부터 제기될 수 있는 다양한 요구를 해소하는 데 보다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종왕〓언론의 속성인 속보경쟁으로 권익보호에 소홀해지는 경향이 뒤따르는데 이를 보도하기 전에 검토해 권익침해의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다면 사후조치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영석〓언론사의 속보경쟁으로 오보가 생기고 인권침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백한 오보나 인권침해는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으나 회색지대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 인권침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사안이 있지요. 따라서 언론사가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히고 사외인사로 구성된 독자인권위 같은 기구의 견해나 지적을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형평성 다양성 균형감각을 보여줌으로써 신문에 대한 독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사의 자율 피해구제 제도의 정착을 위한 조건과 확대 발전 방안에 대해….

▽이용훈〓독자인권위가 신문과 독자 사이를 조정하고 화해하는 데 보다 발전적으로 기능하려면 기구 자체의 권위와 신뢰가 필연적으로 요구됩니다. 시골에서 주민 사이의 다툼이 벌어졌을 때 마을의 좌장격인 어른이 나서서 중재한다면 누구나 수용하기 마련입니다. 독자인권위도 이에 버금가는 권위와 신뢰를 갖춰야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영석〓언론사들의 자율적 보도피해 구제장치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언론사가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사외인사로 구성된 독자인권위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의지가 있느냐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다단한 이해의 충돌문제에 직면한 현대사회의 다양한 관점을 아우를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문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옴부즈맨 제도가 몇 년 전 유행하다가 수그러들었듯이 언론사의 자율적 피해구제장치가 그것을 답습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이용훈〓신문사 자체적으로 독자인권위를 적극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유명무실해질 뿐입니다. 독자로부터 공감대를 얻자면 그에 상응하는 권위와 신뢰를 부여해야 마땅합니다. 굳이 예를 든다면 A1면 머리기사로 보도된 내용에 대한 이의가 제기돼 독자인권위의 의결이 나올 경우 역시 A1면 머리기사로 정정해주겠다는 열린 마음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종왕〓기자들이 겪는다는 ‘소송 노이로제’ 현상은 자칫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도 있습니다. 신문사가 제도적으로 이를 막아줄 책임이 있습니다. 보도와 법률 전문가들을 활용해 인권침해 가능성을 예방하는 장치를 마련한다면 독자의 인권보호와 언론자유 신장에 동시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양창순〓지금은 의사들도 의료사고 노이로제에 걸려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에요. 의사들도 소신껏 진료하고 기자들도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의사나 기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이 필요합니다.

▽이용훈〓법원은 특성상 소송을 제기해야 기능을 발동하는데, 독자인권위는 이런 제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습니다. 독자가 구제신청을 하기 전이라도 독자인권위가 지면을 점검하고 권익구제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사안이 있다면 능동적으로 나서서 심의하고 손상된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종왕〓검찰도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에 나서지만 한편으로는 인지수사도 합니다. 신문사도 이처럼 독자가 구제신청을 하기 전에 먼저 검증하고 시정하는 열린 자세를 갖는다면 독자의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자율적인 시정이 어렵다면 독자인권위 같은 사외기구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용훈〓제도란 특성상 오래 지속되기보다는 유행성 질환처럼 왔다가 가버리는 경향을 보이는데 독자인권위와 같은 자율적 피해구제장치마저 그렇게 된다면 신문과 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동아일보 독자인권위의 출범을 계기로 언론사 전반으로 번져가는 추세를 보니 이런 바람직한 장치가 신문에 대한 독자의 근원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 가면 좋겠습니다.

정리〓김종하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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