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공정한 분배원리는 무엇인가 '맘몬의 지배'

  • 입력 2002년 5월 10일 17시 27분


맘몬의 지배:사회적 가치배분의 철학/김비환 지음/380쪽 1만7000원 성균관대출판부

김 비환 교수(성균관대 정외과)의 이 저서는 사회적 가치의 공정한 배분에 관련된 대표적 사회정의 이론들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는 정치철학서다. “맘몬(Mammon·황금의 신)의 지배가 절정에 이른 듯한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사회의 안정과 개인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분배원리의 모색을 목적으로 한다”는 김 교수의 분석 및 논의에는 한국적 현실에 기반한 자신의 경험적 직관 및 사고가 아주 평이한 일상적 용어를 통해 반영돼 있다.

저자의 작업은 두 가지 긍정적 측면을 지닌다. 우선 정치철학적 논의와 일상인의 담론을 상당히 좁혀 놓고 있다. 둘째로 대부분 서양적인 이론들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과 근접시켜 한국이 당면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김 교수의 작업은 프롤로그, 27개의 장, 에필로그를 통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3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맘몬의 지배’의 사회적 함의를 통한 문제제기 부분이다. 이런 문제제기는 프롤로그와 1∼4장에서 빈곤의 사회학, 평등한 부의 가능성과 도덕성, 행복의 개념과 기본적 사회가치, 적정한 자원의 희소성과 경쟁이라는 주제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김 교수는 오늘날 대부분의 자유민주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맘몬의 지배’라고 본다. 김 교수는 맘몬의 지배가 모든 가치를 황금으로 환원시켜 인간 삶의 다양한 측면을 파괴하고, 행복의 추구와 행복 수단의 확보를 전도시키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나아가 맘몬의 지배는 불가피하게 부의 불평등과 관련되어 빈자와 부자의 계층을 발생시킨다고 본다.

돈의 지배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권력형 비리, 부정부패, 정치자금, 살인사건, 집단간 갈등과 같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대부분의 정치·사회적 문제는 돈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로 인해 돈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가치배분의 문제에 대한 이론적 및 실천적 대안 모색의 필요성이 절실해진다.

두 번째 단계는 세 가지 성격의 논의로 이루어진다. 첫째, 맘몬의 지배에서 경쟁의 규칙과 불평등을 발생케 하는 요인에 관한 논의다. 이 논의는 5∼13장에서 능력과 우연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논의의 핵심은 만약 불평등이 문제라면 평등을 통해 해결의 방향이 제시될 수 있을 텐데, 문제의 비극은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어쩌면 불평등보다 더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불평등이 문제가 되고 불평등을 발생케 하는 원인을 파악한다 하더라도 이것을 통제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 삶의 조건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맘몬의 지배를 가능케 하는 능력의 형성은 자연적, 사회적 우연성과 긴밀히 결부돼 있고, 이런 능력에 근거한 불평등 구조는 가계(가정)를 통해 재생산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불평등 문제를 통제하려 할 때에는 어느 적정지점에서 멈추어야 하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 분배기준 및 원칙과 관련된 논의이다. 이런 논의는 대체로 14∼23장을 통해 분배의 기준으로서 능력과 필요, 공적과 죄과의 문제,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앞의 논의에서 지적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대표적 분배정의 이론들의 사회적 함의를 적절히 분석하고 있다. 특히 한 사회의 분배성격은 개인의 권리와 사회전체의 이익, 그리고 분배의 공정성과 편파성 문제를 어떻게 절충시키느냐에 의해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셋째, 24∼25장에서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나타난 구체적 사례와 관련시켜 사회적 가치배분과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 부분이다. 대학교육과 등록금, 첨단시대의 부의 형성, 노숙자 및 실업문제에 관한 저자의 논의는 앞에서 분석된 이론적 분석들과 관련시켜 앞으로의 한국사회의 분배정의에 관한 방향을 시사한다.

세 번째 단계는 결론으로서 사회정의와 개인 행복간의 관련성을 논하면서 문제해결의 방향을 제시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회정의의 문제로서 인간의 행복추구의 환경을 이룬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조정돼야 하는데, 이 조정의 방향은 신중한 보수주의 입장과 이상적 진보주의 입장에서 제시될 수 있다. 전자는 자기의 안정과 이익을 위해 남을 돕는다는 비교적 이기주의적 동기에 입각한 반면, 후자는 타인지향의 도덕적 성향과 유대감에 기초한다.

김 교수는 후자의 입장을 가능한 그리고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공동체주의적 성격을 띤다. 이 입장은 인간의 삶은 불가피하게 타자와의 관련 속에 살아간다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인정과, 나아가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타자와 관련된 삶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신의 완성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그리고 실상 인간의 내부에는 이러한 공동체적 삶을 지향케 하는 본성이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즉 자애, 우정, 또는 동양의 인(仁)과 같은 타자지향적 도덕적 성향이 내재해 있는데, 이것을 토대로 할 때 사회적 유대를 통한 공동의 삶을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공동의 삶은 인간 행복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본질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런 김 교수의 공동체주의적 해결방향의 시사점은 두 가지 차원을 통해 현실화 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공적인 정치적 영역에서 정책을 통해서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시민사회 내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불평등 문제 해결이다.

이 책을 통해서 제시된 김 교수의 이상적 진보주의 입장은 현 한국사회의 시장중심적 경쟁체제의 급속한 확산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다. 나아가 현재 한국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시장경쟁체제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방향을 제시함과 동시에 한국 정치공동체 자체에 기반한 해결의 방향을 모색한다는 점에 그 중요성이 있다.

장동진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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