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옥자/역사관

  • 입력 2002년 4월 28일 20시 23분


최근 윤곽을 드러낸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작년 일본 극우파가 만든 역사교과서 내용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부분의 서술이 문제가 돼 양국 정상이 문제해결을 위한 기구를 만들자고 합의한 데 따라 구성된 것이다. 정작 교과서는 빠지고 역사를 공동 연구하자는 것인데, 과연 그 결과가 어떠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특히 구체적인 사실만을 법조문을 축조 심의하듯 할 때 오히려 문제가 악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문제의 핵심은 양국간 역사관의 차이에 있다.

▷우리 전통시대의 유교적 역사관은 춘추필법에 의한 시시비비 정신에 입각해 있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잘못된 것은 그르다고 분명하게 가려주는 윤리서의 역할까지 역사의 책무로 여겼고, 그리하여 역사가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국가간이나 개인간에 평화 공존하는 것을 최고 가치로 삼았고 역사적 평가도 거기에 두었다. 이것이 바로 조선왕조가 채택한 역사관이었던 것이다. 국가간 외교도 힘겨루기보다는 예(禮)로써 질서를 세워 일정한 외교 관행을 행함으로써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한마디로 평화사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한 세계질서에서 가장 존중되는 것이 문화역량이었으므로 조선은 문화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키우려 부단히 노력했고 조선 후기는 그것이 최대치로 발휘된 시대였다.

▷그러나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세계적 지각변동은 조선조의 평화적 세계질서와 역사관을 깡그리 부정했다. 부국강병하고 세계를 식민지화한다는 제국주의 세계관이 보편화하면서 역사관도 식민사관으로 고착됐다. 식민사관은 한 마디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투쟁 논리였다. 식민사관에 의해 조선시대는 문약해 빠진 시대로 낙인찍혔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 후 조선은 계속 와해되는 사회로 서술됐다. 당쟁론, 사대주의론이 그 논리의 중심에 있었고 모든 역사적 사실은 힘겨루기와 무력이라는 시각으로 해석됐다. 그야말로 전쟁사관이다.

▷전통적으로 무사의 나라였던 일본이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에 재빨리 편승하게 된 것은 그 체질적 동질성으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군국주의를 신봉하는 일본의 극우세력이 이러한 전쟁사관을 바탕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는 바로 역사관을 점검하는 데서 시작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옥자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교수·국사학·규장각 관장 ojj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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