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권순활/기업만은 흔들지 마라

  • 입력 2002년 4월 21일 17시 26분


권순활 / 경제부 차장
권순활 / 경제부 차장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정권 핵심부의 부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홍3 게이트’는 ‘청와대 게이트’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끝이 안 보이는 권력형 비리의 악취는 국민에게 분노를 넘어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라는 허탈감마저 갖게 한다.

이런 가운데도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의 계절’은 이미 시작됐다. 전현직 대통령이 한결같이 서글픈 말로를 맞았거나 맞고 있지만 정권 재창출 및 정권 교체를 겨냥한 여야의 사생결단식 ‘치고 받기’가 한창이다.

그나마 경제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한숨을 돌리게 된다.

주요 기업의 1·4분기(1∼3월) 실적은 예상보다 훨씬 좋다. 매출액과 순이익이 분기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기업도 많다. 경제성장률 등 거시경제지표도 눈에 띄게 호전되면서 일부 부문은 과열 우려까지 나온다.

물론 재정을 동원한 대규모 내수경기 진작과 우회적인 경기부양효과를 지닌 공적자금 투입 등은 결국 국민경제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었던 경기가 풀리고 국민의 살림살이에 숨통이 트인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앞으로 경제를 생각하면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특히 대선과 지방선거 등 두 차례의 선거가 경제에 얼마나 주름살을 줄지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틈만 나면 “야당과 언론이 경제를 망친다”고 주장하던 정부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한 자리를 얻기 위해 진념 전 경제부총리를 ‘징발’했다. 새로 ‘경제팀 수장(首長)’을 맡은 전윤철 부총리도 장점은 많지만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너무 강조해온 것이 선거 국면에서는 마음에 걸린다.

양대 선거를 거치면서 인기에 영합하는 공약(空約)과 정책 남발 못지 않게 기업의 투자 의욕이 꺾이지 않을지 걱정이다. 지금은 국내 기업간 격차 시정이 기업 정책의 핵심이었던 과거의 패러다임은 맞지 않는 시대다. 세계적 무한경쟁의 달라진 경제 환경에서 ‘기업하기 힘든 나라’가 된다면 한국 경제는 언제라도 겨울로 되돌아갈 수 있다.

냉정히 생각해 보자. ‘대기업은 악(惡)’이라는 식의 적대적 시각으로 더 이상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거나, 하물며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삼성 LG SK 현대차 등이 없다면 대규모 합병을 통해 몰려오는 초대형 다국적기업과 그나마 경쟁할 수 있는가.

21세기 산업정책은 기업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간섭하는 사전 규제에서 벗어나 최대한 자율을 존중하되, 문제가 있으면 사후에 처벌하고 시장원리에 맡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여야 정치권 및 정부가 ‘시장경제’를 존중하고 우리 경제의 도약을 원한다면 최소한 정치논리나 어설픈 ‘개혁’구호로 기업을 흔들지는 말 것을 촉구한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