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전영백/'미션 임파서블' 비엔날레!

  • 입력 2002년 4월 5일 18시 32분


요즘 미술계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화제다. 겉으로 근사하게 보이는 사람도 실제 일을 맡겨봐야 안다고, 세계적인 미술 축전을 또 한번 겪으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특이한 시간 관념이랄까 주어진 시간에 임하는 우리의 ‘튀는’ 자세에 감탄아닌 감탄을 하게 된다. 한 마디로 ‘서두르기 작전’. 조기 미술교육이며 임기응변식 행사 과정이며, 따지고 보면 모두 시간에 대한 조급한 태도다.

‘개막 광주비엔날레’라는 머리말과 함께 어린 학생들이 신기한 현대 작품 앞에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서있는 신문의 보도 사진을 보며, 조기 예술교육열을 새삼 느낀다.

언제부터인가 거의 폭발적으로 뜨거운 교육열을 미술관에서 보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고, 관객과 작품 사이의 의사 소통이 지나치게 활발히 이루어져 미술품의 본래 형태와 색채가 바뀌기도 한다.

▼준비 미흡해 조마조마▼

어린 학생들을 전시장으로 몰아가야 학교가 행정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과연 사실인지, 아니면 그것이 지친 선생님들께 모처럼의 ‘합법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이 미술 축제에 와서, 그것도 오랫동안 관람해야 할 사람들은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 또 미술교육 지침을 짜는 어른들이다. 어린이들이 충격 가치(shock value)를 중시하는 현대 미술을 왜 그렇게 많이 봐야 하는지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사실 ‘깨져야’ 할 사람들은 아직 사고가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은 어린 아이들이 아니라 그들을 베끼기식 미대 입시제도로 숨막히게 몰아가는, 소위 제도권을 잡은 분들이 아닌가.

과격하게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는 요즘의 미술을 너무 많이 접하고 현실과의 갭에 좌절할 많은 미대 지망생들을 미리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럽다.

이러한 현대미술에 대한 조기 교육과는 다른 의미에서, 그러나 더 직접적으로 우리의 서두르기 행태를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 행사를 치르고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관료주의와 미술계 종사자들 사이에 삐걱거림이 행사의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해도 며칠 전까지 완성된 설치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좀 심했다. 그래도 95년이래 4회째 개최하는 국제 행사인데 이제는 이런 식의 날림작전보다는 조직성과 효율성을 갖춘 과정을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프레오픈에 초대되어 개막 전날 오후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전시장 입구를 들어가는 마음은 무겁기보다 차라리 불안했다.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준비가 마무리되기는커녕 설치가 시작되지도 않은 빈 전시 공간들이 눈에 띄었고, 소위 미술의 축제라는 용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경직되다 못해 신경질적인 외국 작가들의 얼굴도 보였다.

마땅히 받아야 할 재정지원이 늦어 일단 자비로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보면 ‘축제’라는 말을 꺼냈다가는 얻어맞을 판이었다. 작품을 쓰레기로 오인하고 컨테이너로 모아 놓은 오물 더미에서 자기 작품을 찾아내느라 애쓰는 작가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차라리 코믹하였고, 개막식 3일을 앞두고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전시공간을 기다리다 지쳐 전시판을 대자보 삼아 분노와 원망을 피력한 작가의 글은 욕으로 끝나 있었다.

▼벼락치기 작전 이제그만▼

라면 상자를 얻으러 다니던 어느 서양 작가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자 적극적으로 자체 조달하는 전투태세에 돌입한 모습이었다. ‘투쟁하여 쟁취하자’라는 우리에게 가히 익숙한 표어를 어느새 몸으로 체험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개막 당일은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세계의 시선이 주목될 때 특히 애국자가 된다지만, 이런 ‘미션 임파서블’의 상황에서 잠을 설치고 들어선 비엔날레 전시장은 그 전 날의 전시장이 아니었다.

이구동성으로 들려오는 ‘대단하다’는 말은 분명 복합적이었다. 그 속내용이야 어찌되었건, 이번에도 우린 해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짓고 부수는 날림 건축의 ‘특기’가 예술의 장에서까지 발휘되는 것을 보니 통탄스럽다.

하루아침에 바꾸자고 다그칠 수는 없으리라. 그래도 서두르기 작전은 이제 그만 두었으면 싶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미술사·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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