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채플린'…우리가 몰랐던 '코미디 황제'의 그늘

  • 입력 2002년 4월 5일 17시 38분


◇채플린/데이비드 로빈슨 지음/한기찬 옮김/1030쪽/2만5000원/ 한길아트

1898년 8월 12일 금요일. 해리엣(해너) 채플린은 거처인 런던의 램버스 구빈원(救貧院) 정문에서 두 아들 시드니, 찰리와 재회했다.

열 세 살, 아홉 살 난 두 아들은 햇살이 빛나는 공원에서 신문을 뭉쳐 공받기 놀이를 했다. 해너는 벤치에 앉아 뜨개질을 했다. 장남은 모아둔 푼돈으로 버찌와 청어, 쿠키를 샀다.

부친은 몇 년 전 엄마의 불륜 이후 가족을 떠났다. 엄마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다시 각자의 수용시설로 뿔뿔이 흩어져갈 신세였지만, 화창했던 이 날은 아홉 살 짜리 찰리의 기억의 창(窓)에 또렷이 기록됐다.

영화사 연구가 데이비드 로빈슨이 쓴 이 평전을 읽으려면 독자들은 채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빈틈없는 기억력의 소유자였던 채플린 자신이 이미 500쪽이 넘는 자서전을 썼고, 로빈슨은 문헌과 인터뷰를 통해 얻은 정보를 첨가해 그 두 배 두께의 책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일단 뛰어들어간 책 속의 길은 걷기 까다롭지 않을 뿐 아니라 넉넉한 보상도 내놓는다. 개인사적 영역과 예술적 영역 양쪽에서 수 천의 플래시를 터뜨리며 접근해간 이 ‘작은 거인’의 모습이 점차 손에 잡힐 듯 밀도있는 총체상(總體像)을 제공하는 것이다. 논란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 삶이었지만, 저자는 객관적 거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친구의 입장’이라고 할만한 따뜻한 시선으로 이 세기의 희극배우에 다가간다.

예술가로서의 채플린은 어떻게 성공을 이루어냈으며, 그가 희극영화에 부여한 매력의 비결은 무엇인가. 저자는 기존의 ‘설명식’ 코미디를 대체한 ‘보편적 표현’의 코미디를 창안한 것이 그 열쇠였다고 해석한다. 나무와 부딪친 그가 나무를 향해 사과하려고 모자를 들어보이는 순간, 그런 그의 정황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의 언어로 ‘설명없이’ 소화된다는 것. 그렇게 해서 그는 단지 ‘영화사의 거물 중 한사람’이 아닌 ‘어느 누구도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얻지 못한, 관객과의 새로운 관계를 창출한’ 인물이 됐다.

친구나 가족으로서의 그는 어땠을까. 조울증에 가까웠던 악명높은 그의 변덕, 까탈스러움을 저자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때의 사랑 에드나가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그의 신문기사를 수집했다는 일화가 증명하듯, 그가 한번 관계맺은 사람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영혼의 울림을 전해주었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모습은 사려깊은 사상가로서의 채플린이다. 지인들은 ‘그는 다른 책이 없으면 라틴어 문법책이라도 주워 탐독하는 사람이었다’고 증언했다. ‘좌파’로 종종 비난받은 그의 모습도 ‘약자에 대한 동정’이 몸속 깊이 배인 그의 내면을 오해한데서 비롯됐다.

이발사가 절대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연설하는 영화 ‘독재자’ 장면은 그의 인간관, 나아가 그의 예술관까지 집약한다. “삶은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방식을 잃어버렸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세계에 증오의 방벽을 쌓았으며, 지식은 우리를 냉소적인 인간으로, 지혜는 우리를 냉혹하고 비정한 인간으로 만들고 말았다. 생각은 너무 많으나 감정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성이다.”

글을 어떻게 닫을까. 기자는 이름을 특정할 수 없는 영화의 끝장면을 떠올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플린이 뒤뚱거리며 시골길 저편으로 멀어져간다. 갑자기 몸을 푸르르 떨더니 좌우로 경쾌한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검은 화면이 그의 모습을 조리개처럼 지워간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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