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우궈광/美 ˝콧대높은 중국이 미워˝

  • 입력 2002년 3월 27일 18시 04분


장쩌민(江澤民) 중국국가주석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베이징(北京)의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만나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양국간의 싸움이 재연되고 있다.

쌍방이 서로의 인권문제를 비난하고 나섰으며 철강 등을 둘러싸고 무역마찰도 빚어지고 있다. 대만 등 지역안정 문제와 핵전략, 무기확산금지 등 글로벌한 문제들도 쟁점이 되고 있다. 두 사람이 불과 한달 전 ‘건설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로 약속한 것과는 크게 달라진 셈이다.

▼反테러전선 구축에 시큰둥▼

일찍이 일부 분석가들은 양국간 문제는 마치 계곡 속의 바위와 같아서 ‘9·11테러’와 같이 격류가 넘쳐흐를 땐 물 속에 잠겼다가도 물이 잠잠해지면 다시 수면위로 드러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제는 언제 바위가 잠기고 어떻게 떠오르는가를 모른다는 것뿐이다.

양국관계에서 다른 자질구레한 대화와 교류는 제쳐두고 불과 4개월 사이에 부시 대통령이중국을 2번이나 방문했다. 장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도 머지않아 미국을 방문한다.

이처럼 우호적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데 왜 암초들이 나타나는 것인가. 9·11테러 이후 양국관계가 급격히 개선되다가 다시 마찰을 빚는 원인은 무엇인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단락 짓고 국내 경제회복 등 일련의 큰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때 왜 이 ‘오만한 텍사스의 목동’은 멀리 중국을 찾아온 것인가. 그의 방문 뒤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실마리는 역시 부시 대통령의 베이징행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주요 목적은 반테러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베이징이 2단계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희망했다.

우선 중국이 이라크를 포함한 ‘악의 축’ 국가들에 무기나 군사기술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줄 것과 북한을 설득해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할 것을 바랐다. 이는 다음 단계로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이처럼 반테러전을 확대하려는 것은 부시 대통령의 연임 전략의 일환이다. 부시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 선거 전에 이라크를 빠르고 맹렬하게 공격할 것이다.

이는 10년 전 부친의 선거 패배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이다.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걸프전으로 이라크를 ‘징벌’함으로써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얼마 안가 국내 경제회복 문제에 부닥쳐 재선에 실패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를 쓰러뜨렸던 골치 아픈 국내 경제문제 대신 이라크 공격이라는 재선성공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 발언 이후 곧바로 베이징을 방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중국은 강대국 중 유일하게 이라크 및 북한과 친밀한 나라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중국의 협력만 얻을 수 있다면 2단계 테러전은 훨씬 쉽게 치를 수 있다. 적어도 중국의 견제를 피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과 각료들은 9·11테러 이후 중국의 협력 가능성을 읽었다. 문제는 대가를 바라는 중국의 요구 수준을 낮추는 것으로 부시 대통령이 중국이 덜 중요한 척 일본 한국을 거쳐 중국에 온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문제는 베이징이었다. 베이징이 부시 대통령의 방중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 중국은 양국관계에만 관심을 뒀고 심지어 대만문제 등 곤혹스러운 문제를 건드렸다. 중국이 올 가을 지도부 교체 등 내부 정치일정 때문에 외부문제에 둔감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베이징 방문 이후 부시 대통령은 중국의 협력을 기대하지 않게 됐다. 나아가 중국을 의심하고 심지어 적대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부시,中협력 얻기 포기▼

이로 인해 중미관계가 변화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대외관계를 희생시키면서 국내 경제 회복과 정치적 지지를 얻어야 하는 입장이다. 최근 철강제품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것이나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에 별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반면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보다 개선됐다. 부시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탓이다. 이는 9·11테러 이후 잠시 높아졌던 부시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신뢰가 다시 깨진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향후 양국간 대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중미관계는 부시 대통령의 방중으로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우궈광 홍콩 중문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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