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제도에 갇힌 자유,도덕에 눌린 욕망 '사드'

  • 입력 2002년 3월 22일 18시 30분


1921년 프랑스화가 팰리시앵 모리스 작품
1921년 프랑스화가 팰리시앵 모리스 작품
◇ 사드/김중현 지음 /384쪽 1만2000원 좋은책만들기

아다시피, 새디즘(sadism)이란 현대의 온갖 성적(性的) 이탈의 근원으로 이야기되는 ‘성적 대상에 고통을 줌으로써 쾌감을 얻는 행위’다. 이 말이 ‘사드’(Sade·1740∼1814)라는 프랑스 작가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설사 안다 해도 ‘새디즘’이라는 말에 갇힌 단죄와 배척, 억측과 오해 때문에 인간 사드에 대한 투명한 판단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사드’는 그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평전이라 눈에 띈다. 그동안 외국 작가들이 쓴 전기가 국내에 소개되기도 하고(‘사드’, 모리스 르베, 이윤옥 옮김, 창, 1999) 원전들도 꾸준히 번역 출간돼 오긴 했지만(소돔 120일, 고도, 2000) 성(性)에 관한 담론이 상대적으로 폐쇄됐었던 지난 사회 상황과 맞물려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쉽고 평이한 평전이 나왔다는 것이 우선 반갑다.

이 책은 국내 작가가 주로 사드에 ‘관한’ 국내외 저작들을 토대로 그의 일생을 짜깁기한 것이기는 하나, 한 인간에 대한 객관적이고 열린 시각을 전제로 성실하게 접근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 하다.

사드는 프랑스 혁명을 앞둔 18세기 후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지만 광기와 방탕함으로 귀족 사회를 떠들썩하게 해 평생 투옥과 도주, 정신병원 입원을 반복했던 인물이다. 미망인을 방에 가둬 놓고 채찍으로 때리는 가학적인 성행위를 하는가 하면 집단 성교에다가 무도회에 참석한 여자들에게 최음제를 먹여 추행을 일삼기도 했다.

그러나, 사드가 즐겼던 잔혹한 성 행위는 당시 부패와 일탈로 곪았던 프랑스 귀족들의 전형이었다고 한다. 사드는 프랑스 혁명전야라는 소용돌이속에서 도덕적 질서를 재확립하려고 했던 구체제(앙시앵 레짐)의 희생양적 성격이 짙은 것이다.

왜 하필 사드였을까. 그가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십자가에 대한 모독을 일삼고 깨부수면서 ‘신은 없다’고 외쳤다. (반신·反神 주의적 경향의 가장 급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이 ‘소돔 120일’이다.)

감옥과 정신병원은 그의 육신을 가두었지만, 그의 욕망을 가두지는 못했다. 유일한 욕망의 배출구를 글로 삼은 그는 후일 자신을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성애소설들과 희곡들을 써 냈다.

바스티유 감옥에서는 12m 길이의 두루마리 종이에 깨알같이 ‘소돔 120일’을 썼으며 샤랑통 정신병원에서는 ‘쥐스틴’ ‘쥘리에트’ 같은 성애소설을 쓴다. (정신병원에서 소설을 썼던 사드의 말년은 영화 ‘퀼스’에 잘 살아 있다)

책을 읽어 보면 사드는 제도와 도덕이라는 틀 속에서 안주하면서 누릴 수 있는 행복보다는 자신의 믿음과 욕망에 충실히 복종하면서 마침내 궁극적인 존재의 자유를 원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범부들이란 욕망에의 충실은 고사하고 진정한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며 살고 있지 않은가. 알았다 하더라도 얼마나 억압하며 살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그가 부럽다.

‘사람들은 내 사고 방식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남의 눈치를 보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미친 사람이오. 내 사고 방식은 내 사색의 결실이오. 그것은 내 존재, 내 생체조직과 같은 것이오. 나는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주인이 못 되오.’

‘그렇다. 나는 방탕아다. 나는 방탕아가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다 해봤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한번도 시행한 적이 없다. 따라서 나는 방탕아긴 하지만 범죄자나 살인자는 아니다.’

사드는 절대자유를 위해 절대고독을 비용으로 지불해야 했다. 그를 향한 부러움 한켠에 안타까움이 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주변에는 늘 많은 여자들이 있었지만, 일생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소통을 나눈 여자는 없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를 버렸고 그를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가 버렸다. 감옥과 정신병원에 유폐돼 오직 상상력만으로 성에 대한 집착과 광기, 생에 대한 절박함을 풀어내야 했다.

요즘처럼 한국사회에 성 담론이 무성했던 적도 없다. ‘인간 사드’에 대한 투명한 이해는 방향없이 무수하기만 한 이 시대 담론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리라 믿는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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