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불꺼진 교수연구실 ´위기의 대학´

  • 입력 2002년 3월 11일 17시 22분


세계적 학자로 꼽히는 미국 스탠포드대 존 테일러 교수(56·경제학)는 ‘건포도 교수’로 유명하다. 건포도 모양의 옷을 입고 강의를 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그는 ‘테일러 공식’을 창안한 유능한 교수이면서도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수업에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이같은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대를 포함해 전국의 많은 대학들이 학생미달이라는 위협적인 현실에 부딪히고 있다. 대구 경북의 30여개 대학들도 몇차례 걸친 추가모집을 하고나서야 겨우 정원을 채웠다. 대학 정원보다 고교 졸업자가 본격적으로 적어지는 2004년경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학에서는 긴강감을 찾기 어렵다. 신학기가 시작됐지만 지역 대학 몇 곳의 밤 풍경은 이런 우려가 결코 사실무근이 아님을 느끼게했다.

밤늦도록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도서관에서는 학생들이 숨죽이고 공부를 하는데도 교수 연구실 건물은 오후 8시 이후 공대와 농대의 실험실, 법대의 고시준비반을 제외하곤 적막하다. 화장실과 복도의 불빛만 썰렁하게 건물을 밝히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나오던 학생들은 “교수는 그저 그런 강의하고 학생들은 따로 공부하는 게 요즘 대학 아니냐”고 했다. 감명깊게 들은 강의나 평생 잊지못할 것같은 교수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대부분 “없다”라고 답했다.

노벨상을 4명이나 배출한 일본 교토대학에서 유학했던 한 교수는 “교토대학 교수들은 오직 공부밖에 모르는 것 같더라”며 “전운(戰雲)이 감돌 정도로 교수들이 무섭게 공부하다보니 학생들이 따라가지 못해 탈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공부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이 적지 않고 신입생이 줄어드는 위기상황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도 우리 대학에서는 전운은커녕 긴장감도 찾기 어려운 것 같다.<대구에서>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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