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노장철학으로 동아시아 문화를 읽는다'

  • 입력 2002년 3월 8일 18시 32분


◇ 노장철학으로 동아시아 문화를 읽는다/조민환 지음/333쪽 2만원 한길사

동아시아 사상사의 주류였던 유학의 입장에서 봤을 때 노장사상은 말 그대로 가까이 하기도, 그렇다고 멀리하기도 애매한 고약한 상대였다. 이 딜레마적 상황은 인간에 대한 관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연에 대한 관심이 빈약한 유학적 사유의 특징으로부터 비롯된다. 유학의 취약점으로 종종 지적되는 형이상학적 요소의 빈곤은 유학적 사유의 이런 특징이 구체화된 결과다.

유학이 노장사상에 대해 취하는 이중적인 태도의 진원지는 바로 이 지점이다. 유학이 노장을 가까이 하기 어려운 이유는 노장이 모든 인간중심적 관심에 스며들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시종일관 폭로시키기 때문이며, 반면에 멀리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간에 대한 자연 질서의 우위를 역설하는 바로 그런 특성으로 말미암아 노장사상에는 유학에 빈곤한 형이상학적 자양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유학의 역사에서 유학적 사유와 노장적 사유에 존재하는 이런 딜레마적 관계를 자각하고 이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사람은 성리학자들이다. 성리학자들은 노장의 탈규범적 성격은 공격하되 그 형이상학적 자산은 끌어안으려 했다. 성리학자들의 노장주석서가 어울리지 않게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리학자들의 노장 해석을 읽을 때는 이런 맥락을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우리 학계에서 거의 독보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노장에 대한 성리학자들의 그런 작업들을 정리하는 데 탁월한 성취를 보여온 연구자이다. 저자가 그 동안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은 이 책도, 몇 가지 성분이 뒤섞여 있기는 하지만, 무게 중심은 마찬가지로 성리학자들의 노장읽기를 정리하는 데 놓여져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몇 해 전에 나온 저자의 첫 번째 저작인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예문서원· 1996)의 속편 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성리학의 본질을 사상사적으로 규명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유학과 노장 전공자들 모두로부터 언제나 간과되곤 하는 관심의 사각지대를 차근차근 정리해나가는 저자의 성실성에 같은 연구자로서 늘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저자의 작업들을 대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아쉬움 역시 그런 고마움의 한켠에 포개져 있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자신의 작업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적인 관심을 ‘유학과 노장사상의 화해(和諧)’라는 말로 간추린다. 그러면서 자신이 성리학자들의 노장읽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작업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화해가 아니라 그 이면에 은폐되어 있는 갈등의 구조를 먼저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철학사 연구의 진정한 목적은 기존 철학자들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생각을 정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은폐시키고 있는 사유의 속내를 들춰냄으로써 철저하게 연구자의 시각에서 그 철학을 재구성해내는 것이다. 이 주장에 동의한다면 이런 요구는 저자가 언젠가는 직면해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축적된 성과를 토대로 한 걸음 더 도약하는 저자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박 원 재 고려대 강사·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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