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재즈바다 오디세이 '그 남자의 재즈일기'

  • 입력 2002년 3월 8일 17시 30분


그 남자의 재즈일기 1·2/황덕호 지음/1권 504쪽 1만5000원·2권 224쪽 8000원 돋을새김

만일 ‘멋으로 본 한국 유행음악사’쯤이 쓰여진다면 지난 10년간은 ‘차인표 재즈에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까지’라는 제목이 적합할 것 같다. 갑작스레 색소폰과 오토바이가 팔려나가고 또 난데없이 하바나와 체 게바라가 동경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현상에 대해 실체는 없고 이미지의 거품뿐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는 쉽다. 하지만 단지 거품뿐이겠는가. 파도가 쓸고 간 뒷자리에는 모래톱의 자취, 조가비의 이동이 생겨난다. 파도는 계속되지만 구비마다 고집스럽고 진지한 잔류자들을 남긴다. 그들로 인해 부박한 유행의 물살 너머 단단한 문화의 지층이 형성된다.

차인표 재즈가 휩쓸고 가버린 자리에 잔류한 재즈팬은 소수지만 진지하고 탐구적이다. 어차피 외생문화라서 앎과 즐김이 동등한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 바람에 정말 많은 재즈책이 나왔다. 담기는 내용은 어차피 비슷비슷하다. 재즈의 역사, 음악이론, 인물론, 명반 디스코그라피 등등. 그런데 어느 책을 두고두고 레퍼런스로 삼아야 한담?

황덕호가 두 권짜리 재즈책을 냈다. 황씨가 누구냐고? 그 이름을 모르면 재즈동네와 별로 가깝지 않다고 봐도 좋다. 그만큼 왕성하게 재즈칼럼을 쓰고 4년째 재즈전문 FM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쌍벽을 이룰만한 김현준이 시카고씩이나 가서 이론공부를 한 서유견문파라면 황덕호는 순수 된장토종으로 ‘궁핍한 시대의 재즈듣기’의 눈물겨운 내력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집필에 꼬박 3년을 바쳤단다. 한 몇 달 자판을 두드려 뱉어낸 상품이 아니라는 건 각 항 사이로 치밀하게 교직된 구성의 얼개로 금세 증명이 된다.

1998년 3월 11일에 시작해 2000년 11월 17일에 끝나는 일기의 형식을 취했다. 그래서 ‘그 남자의 재즈일기’다. 재즈라면 생무식인 ‘나’가 우연히 사촌형이 운영하던 레코드점을 인수해 한발한발 재즈의 세계로 빠져드는 과정을 그렸다. 마치 그 옛날 안현필의‘영어실력기초’가 학습내용보다 군데군데 실린 저자의 ‘구라’에 빨려들게 만들듯이 이 책 역시 초반부는 재즈공부보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 훨씬 재미있다.

‘나’는 재즈를 모른다. 궁금한게 많을 수밖에. 우선 10장의 명반을 선정해 하나하나 섭렵해 나가기 시작한다. 스윙을 알아야 진짜라는데 왜 내게는 군악대 행진곡처럼 들리기만 할까? 황홀하기만한 팻 매스니의 연주를 왜 빠꼼이들은 한 수 아래로 치부할까? 대체 수준이란 뭘까? 오넷 콜먼의 난감한 프리재즈는 왜 생겨났고 무슨 맛에 듣는걸까? 재즈에 입문하면 누구나 부닥칠 수밖에 없는 각종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원고지 2500매의 오딧세이가 200장의 명반과 함께 전편에 이어진다.

서문에 초보자를 위한 ‘재즈음반 안내서’라는 겸손한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딕시랜드에서 퓨전 전야까지 ‘재즈의 모든 것’을 담고자 하는 야심에 차 보인다. 이 책의 장점이자 또한 단점이다. 일기체 소설의 당의정에도 불구하고 웬만큼 불타는 향학열 없이는 이 방대한 내용을 소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긴, “‘네 박자 쿵짝’이 죽여주는 부루쓴디”(1권 221쪽)하는 사람이 이 책의 독자일리 없지. ‘네 박자 열두마디가 한 코러스를 이루며 AABA형으로 전개되는 블루스 형식’(1권 50∼55쪽) 쯤은 깨우쳐야 차인표 재즈의 겉멋을 뛰어넘었다 할 테니.

김갑수 시인·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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