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 입력 2002년 3월 8일 17시 30분


◇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137쪽 8000원 그물코

이 신문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커피를 다 마신 뒤에는 회사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사용해 일을 하고, 햄버거로 ‘간단한’ 점심한 끼니를 때울 지도 모르겠다.

이제 일상에 숨겨진 비밀을 공개한다. 아침에 가볍게 마신 한잔의 커피가 저 멀리 콜롬비아의 울창한 원시림과 미국 플로리다주의 습지를 파괴하고, 대관령 부근의 시냇물을 오염시켰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단장과 노트를 들고 거리를 산책하는 구보씨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다. ‘보통사람’ 구보씨도 우리처럼 여느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낸다. 자, 유심히 살펴보자. 그의 하루에 참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

눈도 뜨지 않은채 자명종을 끄는 구보씨의 머릿속엔 오직 커피 생각뿐이다. 구보씨가 마시는 커피를 잠시 휘저어볼까? 구보씨의 커피를 위해 자라난 커피나무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콜롬비아에 있는 작은 산간 농장에 있다.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지역의 울창한 원시림 대부분이 사라졌다.

구보씨가 작은 숟가락으로 두 번 떠 넣은 설탕은 플로리다주 오키오비호 남쪽에 있는 사탕수수밭에서 왔다. 이 사탕수수밭은 과거에 참억새풀 습지였다.

그가 커피에 넣은 크림은 강원도 대관령 주변의 산간 계곡에 방목된 젖소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젖소들은 물을 마시고 물가의 풀을 뜯기 위해 자주 시냇물을 건너는데, 이 때문에 물이 따뜻해지고 진흙이 많아져서 물고기들이 살기 어렵게 됐다.

커피를 다 마신 구보씨는 그가 마신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물로 그 컵을 닦았다.

구보씨가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읽는 신문은 또 어떤가. 신문용지는 대부분 폐지를 이용해 만들지만, 부족한 부분은 나무를 벌목해 펄프를 제조한다. 이 펄프를 생산하기 위해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지역에서는 150년 된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를 베어낸다. 매년 약 1만Km의 벌목길이 생기고, 엄청난 규모의 숲이 사라지는 것이다.

펄프 제조 과정에서는 강력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생성된다. 다이옥신은 암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면역 체계를 파괴시키고,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생식장애를 가져오기도 한다.

오늘 점심에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로 구성된 세트메뉴를 드실 분은 구보씨의 하루를 좀 더 들여다보시길. ‘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점심식사거리를 선택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느라 오전시간을 다 보낼지도 모르지만.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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