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용섭/北 '군사 신뢰구축' 응하라

  • 입력 2002년 3월 3일 18시 24분


한미 두나라의 군사당국자들이 함께 연구하여 마련한 한반도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이 발표되었다. 지난번 두 나라 정상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문제를 대화로 풀기로 합의한 이후 발표된 것이라 더욱 주목된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위협 문제를 제기한 이후 재래식 군사력 문제도 미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하려는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한미간에 공동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이후 우리 국방부와 주한 미군, 유엔사령부가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을 달성하기 위한 연구결과가 발표됨으로써 이제 두 나라는 공동의 방안을 갖고 대북한 군사 협상에 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미 합의안 평화의 제기▼

91년 12월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대규모 부대 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와 통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군 인사교류 및 정보 교환 등 군사적 신뢰 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기본합의서는 이행되지 못했다. 북한이 이를 이행할 의사가 없었으며 북한 핵문제가 남북 대화를 가로막았다. 그 뒤 미국은 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우선시하면서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리고 남한은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으로 인해 북한과 아무런 대화도 갖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의 출범 이후 햇볕정책으로 남북의 화해 협력이 촉진되기는 했으나 그 진전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사력의 대립과 긴장이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에 있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신뢰 구축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여 왔다. 군사적 신뢰 구축은 군사적 의도를 공개하고 군사력 운용을 투명하게 하고 군사적 활동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나, 북한은 신뢰 구축을 주장하는 국가들이 영향력을 불어넣어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2000년 9월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이 지키지 않으면 남북끼리 합의한 신뢰 구축은 휴지조각이 될 뿐”이라고 하면서 남한의 신뢰 구축 제의를 거부했다.

지금도 북한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지 않으면 남한의 대북 지원이나 대미 관계 개선에도 제약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미 두 나라도 한반도에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실체인 두 나라가 공동으로 긴장완화를 시도하지 않고서는 군비통제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북한이 한미 두 나라 사이를 이간시키는 전략에 대응할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된 신뢰 구축 방안은 그동안의 교착상태를 타개할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 내용을 보면 유럽에서 냉전을 종식시키는데 일조한 신뢰 구축 조치들인 군사훈련의 상호 통보와 참관, 직통전화, 군 인사 교류와 접촉 확대를 담고 있다. 또 남북간 교류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군사적 지원 조치와 정전체제 유지에 관한 사항도 담고 있어 신뢰 구축 조치를 한반도에 토착화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억지에 주력해 온 주한 미군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은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한미 두 나라 정부가 한 목소리로 북한당국 설득에 나서게 되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 노력은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北, 성의있는 조치 취해야▼

이제 북한도 군사적 신뢰 구축에 성의를 갖고 임할 때다. 북한을 제외한 동북아 5개국은 과거 10년간 동북아 협력대화(NEACD)에 적극 참여하여 군사정보와 군현대화 계획을 공유하면서 군사적 신뢰를 구축해 왔다. 이러한 신뢰 구축 활동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왔다. 북한이 고립경제로부터 벗어나려면 적대의사를 포기하고 남한과 미국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의 길은 멀다고 할 수 있다. 선 군축 주장을 해온 북한이 응할지 의문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군사제한조치와 군축 방향도 잇따라 제시함으로써 북한과 타협가능성이 높은 조치들을 모색하고 합의에 이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용섭(국방대교수·군사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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