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육현장의 우울한 자화상

  • 입력 2002년 3월 1일 18시 32분


3월 개학을 맞는 교육 현장에 달갑지 않은 풍경들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입학식도 치르지 않은 대학 캠퍼스에서는 신입생을 상대로 특별 수업이 실시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급속한 학력 저하 현상에 따라 대학에 들어온 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사전에 ‘과외’를 해야 한다는 게 학교측 설명이다.

몇몇 대학들은 신입생들의 기초 학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입학생 사이의 학력 편차가 심해 우열반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교수들에 따르면 이른바 명문대에서도 과학의 기초 법칙조차 모른 채 이공계 강의를 듣는 학생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울 명문고로 전학하기 위한 밤샘 줄서기가 한창이다. 서울시교육청 앞에는 선착순으로 접수하는 고교 신입생 전학 신청을 위해 며칠 전부터 많은 학부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지나친 열성이라는 비판도 없진 않지만 이 풍경 또한 우리 교육의 엄연한 자화상임에 틀림없다. 교육소비자에게 학교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는 평준화제도의 맹점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울한 현실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교육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대학들은 항상 ‘개혁 대상 1순위’에 오를 만큼 경쟁력 면에서 취약하다. 그나마 우리 교육이 버텨온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 어느 나라 학생들보다도 공부를 열심히 시켰고, 또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다. 그러나 이제 고교생 학력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우리 교육의 장점이 눈에 띄게 후퇴하고 있다. 대학 경쟁력이 답보된 상태에서 고교생 학력마저 뒷걸음질친다면 10년, 20년 후 그 결과가 우리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두려움마저 갖게 된다.

앞서 거론한 두 풍경은 현 시점에서 몇 가지 상징성을 지닌다. 그 하나는 우리 교육제도의 후진성이고, 다른 하나는 학부모들의 남다른 교육열이다. 세계 환경은 급변하는데 우리 교육제도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유연성과 적응력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가 바로 학력 저하 현상이다. 이와 정반대로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없으면 전학도 불사하는 교육열을 ‘밤샘 줄서기’에서 읽을 수가 있다.

정부는 그동안 규제 일변도의 교육정책을 펴왔다. 평준화제도와 입시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는 학부모의 교육열을 억누르려고만 하지 말고 이를 발전적으로 수용해 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다. 후진적인 교육제도 전반에 빨리 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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