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병기/개혁의 敵, 개혁주의자

  • 입력 2002년 2월 27일 18시 29분


의료보험개혁, 교육개혁 등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후 실패작으로 평가된 일련의 개혁조치들은 ‘개혁의 가장 큰 적(敵)은 개혁주의자’라는 역설을 낳았다. 이상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개혁안을 내놓기 일쑤였고 결국 개혁피로증을 낳곤 했기 때문이다.

요즘 국회에서 논의중인 ‘대부업등록법안’에 관한 시민단체들의 주장도 자칫 ‘개혁의 역설’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20여개 시민단체들은 작년부터 사채이자를 연 40% 이하로 묶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시민단체들은 ‘연 60%를 기준으로 정하고 상황에 따라 ±30%포인트를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정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대부업법이 책상 서랍에서 잠자는 사이 일본 대금업체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영업력으로 사채시장을 휩쓸고 있다. 결국 국회는 대부업등록법안을 다시 심의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연 40% 상한’ 주장의 근거로 한국도 저금리시대로 접어들었고 선진국의 이자상한선이 연 25∼40%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채업자들은 “사채시장에서 연 100% 금리로 거래되는 현실에서 연 40%를 이자상한선으로 정할 경우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합법적으로 영업을 할 대부업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도 “현실적으로 지켜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자상한선을 설정할 경우 음지의 사채업자를 양성화하려는 입법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기존의 고리대 영업은 더욱 음성화하면서 서민들의 피해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일본도 이런 점을 감안, 83년 대부업법을 시행하면서 초기에는 연 108%를 이자상한선으로 정한 뒤 차츰 상한선을 낮춰왔다. 현재 이자상한선은 22%선까지 내려와 일본의 점진적인 개혁조치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격언이 있다. 진정한 개혁주의자라면 끊임없이 현실 정합성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병기 경제부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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