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TV에서 일본말이 막 나오다니

  • 입력 2002년 2월 18일 18시 09분


지명관 한일 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정부의 무원칙한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항의해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문화관광부의 만류로 어제 사퇴 의사를 철회하긴 했지만 이번 일은 일본 문화 개방과 관련해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원칙 뒤집기’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가 맡고 있는 위원회는 정부 자문기구로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수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 위원장 자신도 국내의 대표적인 지일파(知日派)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것은 지난주 MBC가 방영한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가 계기가 됐다. 이 드라마가 전체 대사의 30%에 이르는 일본어 대사를 여과 없이 내보낸 것에 그가 격분했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한 마당에 방송의 공공성을 외면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MBC는 “한일 합작드라마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안방극장에서 일본어가 나간 것은 국민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이 드라마는 이틀에 걸쳐 방영됐으나 중간에 아무런 제재조치가 없었다. 문화부와 방송위원회도 손을 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최근 일본 문화의 개방 원칙이 실종된 것도 걱정스럽다. 최근 문화부는 월드컵을 맞아 20일부터 7월 말까지 일본 가수가 부른 일본어 가사 노래를 방송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7월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중단하겠다고 천명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불과 7개월 만에 우리 정부는 일본 문화 개방의 ‘마지막 카드’인 일본어 노래까지 허용하는 극과 극을 오간 것이다.

월드컵과 일본 문화 개방은 별개의 일이다. 관계 당국은 사후심의를 통해서라도 방송사 관계자들을 문책하고 일본 문화의 단계적 개방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철저한 점검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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