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임재춘/과학기술자의 글쓰기 능력을 배양하자

  • 입력 2002년 2월 18일 16시 06분


막스 레닌이 살아있다면 자본론 대신에 의사전달론 을 썼을 것이라는 농담이 실감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기술보다는 행정이나 경영이 경쟁력이 높고, 외교나 정치분야는 더욱 월등하다. 그러나 이들보다도 언론은 한수 위에 있다. 사회적 경쟁력이 의사전달능력과 비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이 푸대접을 받는 것도 이들이 가진 한심한 글쓰기 능력에서도 비롯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푸대접은 참을 수 있다 하여도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지장을 주는 것이 문제이다.

미국의 경우이지만 공대를 졸업한 직장인에 대하여 직장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지식이 무엇인지 조사하여 보았더니 결과는 해당분야의 전공이 아니고 발표력(Writing and Presentation)이었다. 즉 Communication이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미국인은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대학과 직장에서 Technical Writing은 필수이다. 요즈음에는 그 영역도 매우 넓어져 종래의 기술관련 보고서 이외에도 제품설명서나 결산보고서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제품설명서는 그 내용이 잘못 되어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에 손해배상이 엄청나고, 결산보고서는 대부분 기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일반 주주가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향으로 미국에서는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 분야에 종사하면서 Technical Writing 관련 Web Site를 100개 이상 운영하고 있다.

과학기술자는 새로운 개념의 개발만큼 이의 전달에도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여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기술보고서가 너무 전문적이어서 내용이 전달되지 않으면 그 보고서는 실패한 것이 되고 그 책임도 작성자가 져야 한다. 과학기술자는 또한 정치가나 경영인, 넓게는 일반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기술적인 내용을 설명할 수 있어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과학기술자들만의 옹알이는 집밖에 나서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과학기술의 경쟁력이 손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어렵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자면 소질도 있어야 하거니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과학기술인은 이 점이 부담되기 때문에 글쓰기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글쓰기를 완벽하게 할려니 그렇지, 엉터리같은 잘못을 몇가지만 고치면 제가 보기에도 80점은 되는 보고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여기에 간략하게 그 비법(?)을 소개할까 한다.

첫째가 철저하게 읽는 사람 위주로 작성하는 것이다.

주어만 생략하지 않아도 내용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데 우리는 문장마다 주어를 생략하여 읽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읽는 사람의 대상과 수준에 따라 내용을 다르게 작성하고 자신의 박식함과 고생은 철저히 자제하여야 한다.

두 번째가 논리에 따라 내용이 자연스런 흐름을 타야 한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개념만을 담고 문장과 문장이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읽는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여 내용을 전개하여야 한다. 내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 흐르듯이 전개되다가 흐름이 바뀌면 그러나 등의 접속사를 사용하여 신호체계를 적절히 가동하여야 한다. 문단은 글의 중간 조직체로 하나의 중심되는 사상만을 담기에 소주제가 문단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것이 좋다. 문단의 전개도 문장과 같이 소주제들이 유연한 흐름을 타야 한다.

세 번째가 주요내용이 한 눈에 파악되도록 간결하여야 한다.

신문기사처럼 제목과 부제만으로 내용의 50%를, 첫 문단까지 보태면 80%를 읽는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을 억제하고 의미의 중복을 피하여야 한다.

네 번째는 체제를 반듯하게 하는 것이다.

서론은 간략하되 정곡을 찌르듯이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예제를 잘 활용하고, 본론은 독창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기술하며, 결론은 단순한 요약을 넘어 인생의 유언장을 작성하듯이 자기 논리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새기며 못다한 과제에 대한 소개와 가능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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