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순수하고도 위대한 예술가의 영혼 '내 남편 바흐'

  • 입력 2002년 2월 15일 17시 41분


◇ 내 남편 바흐/ 안나 막달레나 바흐 지음 / 272쪽 8천800원 우물이 있는 집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의 마누라치고 속내를 들어보면 의외로 남편의 이중성에 넌덜머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했으면 ‘그 사람 인간성을 제대로 보려면 마누라와 운전기사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했을까.

그러나 독일의 대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아내 안나 막달레나 바흐가 쓴 ‘내 남편 바흐’를 읽다보면 바흐를 다시 보게된다. 이토록 평생 동안 아내의 지고지순한 존경을 받을 정도라면 바흐의 음악에 대해 아무리 문외한인 사람도 그의 음악 앞에 경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안나는 바흐가 첫번째 부인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13년만에 사별하고 만난 두 번째 부인이다. 재능있는 소프라노 가수였으며 바흐보다 15세나 연하였다.

안나는 바흐 사후 남편을 그리워하며 바흐와의 만남과 결혼, 행복하면서도 신기한 일 투성이었던 신혼시절, 바흐가 성 토마스교회의 칸토르(합창장)로 재직하던 라이프치히 시절과 순탄치 않았던 만년, 바흐의 죽음 등을 시간순서대로 기술했다. 위대한 작곡가 바흐의 뒤에는 그를 존경하고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서도 11명의 아이를 키우며 항상 평화로운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 애썼던 한 여자의 헌신과 사랑이 있었음을 확인케 해준다.

바흐 역시 안나를 많이 사랑했던 듯 하다.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을 낼 정도 였으니 말이다.

안나에게 바흐는 단순히 남편이상으로 깊고 큰 존재였다.

‘오랜 결혼생활 동안 그는 결코 완전한 나만의 바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왠지 모를 거대한 힘이 가슴에 밀려와 묘한 두려움으로 나를 떨게 만들었습니다. 표현할 수도 없고, 이유조차 알 수 없는 그 느낌은 그의 피를 나눈 아들이나 딸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감정은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쌓여서 비밀스런 두려움이 되었고, 우리의 사랑으로도 완전히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는 벅찰 정도로 너무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가장 가까운 아내로부터 듣는 한 위대한 예술가의 창작의 고통이다.

‘어느 날 내가 그의 방으로 불쑥 들어갔을 때, 마침 그는 ‘마태오 수난곡’속의 알토 독창 ‘아, 골고다’를 쓰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편안하고 혈색도 좋았던 그의 얼굴이 완전히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잿빛으로 변한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와 그의 방문 옆의 계단에 앉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음악을 듣는 이들이 그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며 작품을 썼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요.’

바흐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장면을 상상하며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로맹 롤랑 등 수많은 문필가들에 의한 전기가 있는 베토벤과는 달리 바흐의 생애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은 편이라 안나의 책은 바흐 음악의 심연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오늘날 바흐 연구가들 뿐 아니라 바흐 음악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가장 중요한 문헌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제목을 보고 예술가의 아내가 겪었을 신산(辛酸)과 삶의 다양하고 진솔한 스펙트럼을 기대했던 기자는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건조한 문체에 오로지 단편적인 남편 칭찬 일색의 내용에 솔직히 실망했다. 구절구절 남편의 존경과 자랑이 지나치다 싶어 시쳇말로 닭살이 돋을 정도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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