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선주자들이 화답할 때다

  • 입력 2002년 2월 9일 16시 17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8일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정치자금을 내겠다”고 한 것은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관행에 비춰 볼 때 매우 가치 있는 선언으로 여겨진다. 재계가 더 이상 정치권에 돈을 뜯기지 않겠다고 공개선언하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우리말고 또 어디 있을지 궁금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 결심이 얼마나 잘 지켜지느냐 하는 점이다.

재계가 정치자금의 ‘법대로 집행’을 강조한 것은 그만큼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수가 많았음을 말해준다. 대통령선거 한 번에 수조원이 뿌려진다는 기록들은 합법적 규모의 정치자금만으로는 누구도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우리 정치의 현실을 증언한다. 소요되는 자금을 재계로부터 끌어다 쓰면서 토착병인 정경유착이 탄생한 것은 비극적 현상이었다. 당선된 후 정치와 경제가 서로간에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정치자금 문제는 악순환을 계속했다.

재계가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이나 정치자금의 불법공여 반대를 선언한 것은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높아져 더 이상 검은 돈을 마련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양대선거를 앞두고 감당할 수 없는 정치권의 요구가 예견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배경이야 어떻든 이번 선언은 우리 정치사에 관행으로 이어져 내려온 불법적 정치자금 조성과 살포행위가 막을 내리도록 하는 데 시대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

불법정치자금을 주고받던 한 축에서 선언이 나왔으니만큼 성사를 위해서는 이제 다른 한 축인 정치권이 화답을 할 차례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하고 정치가 거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정치권의 호응이 없는 한 재계의 선언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재계에서 검은 돈을 빼앗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원천적으로 법이 허락하는 규모의 정치자금만 사용하겠다는 선언도 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앞장서야 할 주인공은 당내 경선주자들을 포함한 여야의 대선후보들이다.

현실적으로 당내 경선에만 후보당 최소 30억원, 최대 수백억원의 자금이 소요되는 상황도 문제이며 더 나아가 금전선거를 촉발하는 일부 유권자들의 수준 낮은 의식도 선결되어야 할 과제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3김씨의 구태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 선언은 지금 시기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경련이 결심을 얼마나 잘 실천하는지, 또 어떤 후보가 그 정신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지를 우리는 눈여겨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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