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옥자/이태원

  • 입력 2002년 1월 27일 18시 13분


이태원(梨泰院)의 한자 뜻은 ‘배꽃 피는 평화로운 곳’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미군부대가 있는 용산과 그 기지촌으로 출발한 이태원은 평화의 산물이 아니라 전쟁의 산물이다. 용산 일대는 역사적으로도 외국군의 주둔지였다.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 군대와 일본군이 번갈아 주둔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의 주둔지였다. 바로 옆의 이태원이 기지촌이라는 사실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이태원의 원래 한자 표기가 ‘태가 다른 곳(異胎院)’이었으니 예전에도 이곳이 기지촌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렇게 외국군의 주둔지였던 용산과 이태원이 서울의 문화지대로 탈바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벌써 몇 십년째 이 나라의 수도 서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주한미군 주둔지를 바깥으로 내보내고 이곳을 제대로 가꿔 한국인의 자긍심을 드높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이다. 옛날에 외국군이 주둔했을 때는 이곳이 서울의 중심지가 아니라 남대문 밖 근교였다는 점도 다시 새겨야 할 점이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미국이 용산기지 이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 근교에 87만평 규모의 부지를 선정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고 이전 비용도 95억달러나 되며, 기간 또한 10여년은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한미군이 입주할 아파트 건설은 그대로 추진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부대 이전을 전제로 하면서 떠날 자리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 쉽지 않은 과제이겠지만 지금부터라도 한미 양국은 머리를 맞대고 현명한 대안 찾기에 나서야 한다.

▷미군은 지난 50년간 고착된 한미관계의 낡은 껍질을 벗기기 위해서라도 공기 좋고 널찍한 곳으로 부대를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군부대 이전은 단지 공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한미관계의 설정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는 미국이 합리적인 한미 우호관계를 맺으려는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한국인에게 보여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태원은 이태원(異胎院)이 아닌 이태원(梨泰院)으로, 배꽃 만발한 평화로운 곳으로 가꿔 민족공원의 일부가 되어도 좋고 쇼핑타운의 특성을 살려 고급스러운 전통문화 상품을 다루는 상가가 되어도 좋을 듯싶다.

정옥자 객원논설위원 서울대교수·국사학·규장각 관장 ojj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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