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고 나서]'저항 권하는 사회'

  • 입력 2002년 1월 11일 18시 00분


시인 보들레르는 대마초의 일종인 해시시에 찌들어 살면서 ‘악의 꽃’을 썼습니다. 비트작가 윌리엄 버로스는 평생 수십가지 마약을 하면서 ‘벌거벗은 점심’같은 문제작을 냈습니다. 독일학자 알렉산더 쿠퍼가 낸 ‘신의 독약’(책세상·2000)은 약물의 등장과 변천을 다룬 책입니다. 역사속 예술가들이 어떻게 약물에 빠지고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구합니다. 작가의 말은 이렇습니다.

“약물은 세계를 깊이 알게 해 주고 끔찍한 일상을 피하게 해 준다. 불가피한 도피를 돕는 약물을 완전히 금지한다는 것은 인간을 불안하게 하는 시간속에 무방비 상태로 던져 넣는 것과 같다.”(다소 위험하지요? ^^)

약물의 역사에서 19세기 낭만주의는 변곡점입니다. 계몽과 합리에 신물을 낸 예술가들이 그동안 종교제의나 사교모임같은 집단 행사때나 쓰였던 약물을 개인 도취를 위해 쓰기 시작합니다. 예술가들의 약물사랑은 20세기 아방가르드 운동, 미국의 비트 제너레이션에까지 이어집니다.

신간 ‘헐리웃 문화혁명’(시각과 언어)은 1970년대 섹스 마약 로큰롤을 향유했던 미국의 저항 세대가 어떻게 현재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주류로 성장하게 됐는 지 밝히는 책입니다. ‘낡은 것은 악’이라고 조롱하면서 당대에는 아웃사이더 골칫덩어리로 격리됐던 그들이 다음 세대의 주류 문화를 이끌 싹이었다는 것은 지극히 역설적입니다. 가장 반사회적이고 반문화적인 저항행위가 새로운 문화를 여는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지요.

연예인들 마약 스캔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요즘 한국사회의 마약열기는 미디어에서 전하는 그 이상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엑스터시’같은 환각제는 돈만 주면 서울 강남이나 신촌의 대학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마약이 범죄인가? 하는 피곤한 질문을 여기서 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우리 사회도 이제는 법과 제도의 틀이 아닌 문화적으로 사회 현상을 보는 여유를 가져봄 직 하지 않을까요. 70년대 후반 영국과 서구사회를 흔들었던 펑크 열기는 만성적인 경제불황에서 청년실업이 급증한데 따른 것이 주이유였습니다.

번듯한 대학을 나와도 밥벌이를 찾을 수 없는 사회, 속고 속이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불신, 상생(相生)이 불가능한 경쟁, 극에 달한 지도층의 부패…. 저항하는 젊은이들을 탓하기 전에 ‘저항과 허무를 권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어른들의 반성이 우선 되야 할 듯 합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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